[동아광장/홍찬식]교육개혁 잠시 미루자

  • 입력 2003년 3월 7일 20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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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가 시작된 뒤 교육인적자원부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불만사항들이 빼곡히 올라와 있다. 자율학습, 0교시, 학교급식을 시정해 달라는 내용이 많다. 하나같이 해묵은 과제인 데다 교육당국이 개선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것들이다. 약속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세상의 시계는 빠르게 돌고 있는데 우리 교육의 시계는 멈춰선 채 좀처럼 움직일 줄 모른다.

김대중 전 정부는 교육개혁에 의욕적으로 나섰다가 집권 후반기에는 아예 손을 놓고 말았다. 그 사이 우리는 엄청난 국력 손실을 입었다. 지금도 선진국은 멀찌감치 앞서 달려가고 있는데 우리 교육은 제자리걸음, 혹은 뒷걸음질치고 있다.

▼각계 다른 목소리부터 정리▼

새 정부 출범 이후 교육부총리의 인선지연 사태는 앞으로도 교육개혁이 난항을 겪을 것임을 시사한다. 교육 문제는 노무현 정부 이후에도 지속될 과제이기 때문에 당장의 큰 성과에 욕심을 내는 것은 무리이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렇더라도 적어도 교육이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은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교육은 상반된 이념과 가치관이 극한 대립의 양상을 보이면서 혼돈의 수렁에 빠져 있다. 교육은 흔히 엘리트교육과 공동체교육으로 나뉘는데 엘리트교육은 우수 두뇌를 양성하는 것이고 공동체교육은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 목표는 평준화정책이 나타내주듯 수십년간 공동체교육에 맞춰져 왔으나 이미 한계에 부닥쳤다.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으며 하향평준화의 부작용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 내부에서 교육경쟁력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두 가지 목표가 서로 정면 충돌하고 있다. 교육부총리 인선 갈등은 교육 해법의 ‘국론 분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핵심 인재도 키우고 교육기회도 확대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실정에서는 두 목표가 서로 발목을 잡고 방해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이를테면 평준화교육은 엘리트교육을 가로막고 있다. 평준화의 ‘예외’를 허용하는 것에 대해 반감이 큰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정권들은 두 목표 사이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허송세월을 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교육에 대한 국민의 기대수준은 높아졌지만 교육이 변화하지 않은 것도 문제를 더욱 키웠다. 미국과 유럽의 교육환경과 우리 교육이 대비되면서 학부모들은 상실감에 빠졌다. 많아야 두 자녀를 기르는 핵가족 시대의 부모들은 자녀에게 수준 높은 교육을 선사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외국처럼 좋은 교육여건을 만들려면 국가의 교육예산을 지금보다 몇 배 이상 늘리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의 국가재정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이 같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우리 교육을 붕괴 직전으로 내몰고 말았다. 공교육의 무능과 공백을 파고드는 사교육시장은 공교육을 비웃기라도 하듯 공룡처럼 비대해져만 간다. 과거에는 학부모들이 교육에 불만이 있더라도 뾰족한 수가 없었지만 요즘 학부모들은 자녀를 곧바로 외국에 내보낸다.

이런 가운데 교육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사공’들은 교육당국 교사 학교 학부모 학생 심지어 시민단체까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들이 저마다 다른 소리를 외치니까 교육개혁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난감할 수밖에 없다. 배가 산으로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은 서로 목소리를 높일 것이 아니라 일단 정리정돈부터 해야 된다.

▼미래 내다보며 ‘틀’부터 짜야▼

새 정부는 교육개혁을 서두를 일이 아니다. 자칫 어설프게 손을 대면 더 큰 혼란이 벌어진다.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고 우리 교육이 과연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정하는 일이 급하다. 선진국도 교육의 고비 때마다 국론부터 결집했다. 미국도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21세기 교육보고서를 만들어 그에 따라 개혁을 모색했고 다른 국가들도 신중한 논의를 거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도 무엇에 쫓기듯 교육개혁에 나설 일이 아니다. 각계 의견을 모아 국가적인 마스터플랜을 먼저 만들고 나서 세부 작업에 들어가는 게 순서다. 조금 늦어지더라도 일치된 국론 아래 확실한 개혁을 펴는 것이 교육과 나라를 위해 더 빠른 길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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