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도지사 말한마디에…연구과제 왔다갔다

  • 입력 2003년 2월 4일 22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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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 산하 농수산연구기관들이 심대평(沈大平) 도지사의 즉흥적인 권유를 여과없이 연구 과제로 수용해 논란을 빚고 있다. 과학적 판단 보다는 비전문가인 자치단체장의 권유를 앞세운 이같은 과제 선정 방식 때문에 이들 연구기관들의 연구력과 예산이 크게 낭비되고 있다.

충남도 농업기술원은 3일 국내 최초로 아열대성 과일인 ‘용안(龍眼)’ 재배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하루만인 4일, 전날 발표한 아열대성 과일은 확인 결과 ‘비파’이며 이 과일은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이미 남해안과 제주 지방에서 재배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착오 만큼이나 어이없는 것은 용안으로 알았던 비파의 재배 경위. 기술원에 따르면 심 지사가 1996년 자매결연 도시인 중국 허베이성에서 용안(실제는 비파)을 먹어본 뒤 수행원을 통해 종자 3개를 보내며 “농가 소득원이 될지 검토해 보라”고 권유해 재배에 나섰다.

중국 남부지방이 원산지인 용안은 생육 온도가 20∼22℃로 충남지역에서 야외 재배는 처음부터 불가능하고 하우스 재배도 연료비가 많이 들어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작목.

기술원측은 그러나 이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이 종자의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도록 하기위해 7년씩이나 연구력을 쏟아왔다. 용안이 새로운 농가 소득원이 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기술원 관계자는 “일반 농가에 보급해 소득 창출을 기대하기는 처음부터 어려웠다. 이번 재배는 도지사의 농업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차원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충남도 내수면개발시험장은 ‘종개’라는 어류를 시험양식 어종으로 선정해 놓고 고심 중이다. 양식이 어려운 데다 경제성도 없어 보이지만 심 지사의 권유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양식을 하고있기 때문.

심 지사는 지난해 2월 시험장을 방문, “중국 옌볜에서 ‘아바이 고기’라는 물고기를 튀김 요리로 먹어보니 맛이 있었다”며 양식 가능성을 검토해 볼 것을 주문했다.

처음 4개월 동안은 아바이 고기의 정체를 몰라 부심하다 지난해 6월경 어류 수입업자를 통해 옌볜에서 반입해 전문가들에게 보인 결과 정식 학명이 ‘종개’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종개는 냉수성(冷水性) 어류로 충남지역 수온에서는 서식이 어렵고 모양이 비슷한 미꾸라지와 비교해 맛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게다가 번식력도 떨어져 경제성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종개 양식에 대해 자문한 전북대 김익수(어류생태학) 교수는 “양식이 어렵고 기호상 특징이 없는 종개를 왜 양식 어류로 선정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험장측은 “가능성이 없다고 알려진 양식이 종종 성공하기도 한다”며 전체 연구원 4명 가운데 1명이 이 종개 시험양식에 주력하고 있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와 내년도 사업에도 이를 포함한 상태.

이에 대해 이들 연구기관 주변에서는 “도지사의 권유를 ‘지시’로 받아들이는 연구기관의 구태의연한 자세도 문제지만 심 지사가 연구 과제 선정 등에 즉흥적으로 개입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전=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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