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학과재수' 크게 늘었다…학부제 따른 전공편중 극심

  • 입력 2003년 1월 29일 19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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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한양대에 입학해 올해 3학년이 되어야 할 김진영씨(21)는 동기생들과 달리 2학년에 진학한다. 김씨는 입학 이후 휴학이나 낙제점 등 ‘결격 사유’가 없었다. 그가 1년 늦게 대학생활을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원하는 학과에 가기 위해 이른바 ‘학과 재수’를 했기 때문이다.

사회과학계열로 입학하면서 그는 행정학과를 지망했다. 그러나 1학년 학점이 예상에 못 미쳐 행정학과 진학이 어려워지자 2학년으로 올라가는 것을 미루고 아예 1학년 과목을 1년간 재수강한 것. 김씨는 결국 올해 행정학과에 들어갔다.

김씨는 “1년간 학교를 더 다니면 시간은 물론 등록금도 만만치 않다”며 “그러나 이런 대가를 치르더라도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학부제 시행 이후 인기학과에 대한 편중 현상이 심해지면서 학과 선택의 잣대가 되는 학점을 높이기 위해 대학을 1년 더 다니는 이른바 ‘학과 재수’가 대학생들 사이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대에 따르면 자연대의 경우 1999년 입학생 320여명 중 16명가량이 1년간 더 공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양대 관계자도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학생들 사이에 ‘다운(down) 복학’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될 정도로 ‘학과 재수’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자연대 4학년인 박상현씨(23)는 2학년을 마치고 3.0의 학점(4.3만점)으로 전산과에 지원했다 실패했다. 박씨는 “1년 동안 다시 1, 2학년 과목을 수강해 학점을 3.5로 높인 뒤 전산과에 진학했다”며 “시험 몇 번으로 결정되는 학점을 전공 선택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것 자체가 문제다”고 말했다.

고려대 공학부 02학번 조연우씨(20)는 “학점을 높이기 위해 시험점수가 낮게 나온 과목은 학기 중 수강을 취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하는 학점을 얻지 못해 올해 ‘학과 재수’를 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원하는 전공 선택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학생들은 ‘제2의 입시’를 치를 정도라고 말한다.

서울대 인문사회계열 02학번 오혜진씨(20·여)는 “수능은 배치기준표라도 있지만 학과 배정은 아무런 자료도 없어 마치 대학입시 공포를 다시 느끼는 기분”이라고 털어놓았다.

한양대 김두섭(金斗燮) 사회과학대 학과장은 “현재의 학부제는 인기 학과로 쏠리는 현상이 너무 심각해지면서 일부 학과나 학문이 황폐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연세대가 2002학년도 인문계열 신입생들을 상대로 지난해 10월 희망 전공을 조사한 결과 심리학은 전공 인원의 4.5배에 이르렀고 사회학과는 3.5배, 중문과 2.7배, 영문과 2배 순이었다. 반면 독문과 불문과 노문과 철학과는 정원의 20%가 채 안되는 인원이 지원하는 편중 현상을 보였다.

이에 대해 한국대학교육연구소 김삼호(金三鎬) 연구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들의 2002년 대학지원금 평균이 국내총생산(GDP)의 1.06%인 데 비해 한국은 0.48%로 절반에도 못 미치는 등 대학교육에 대한 정부 지원이 부족해 취업과 같은 시장의 논리에 따라 학과 선호도가 그대로 결정되고 있다”며 “학부제 시행으로 비인기 학과가 고사(枯死)하는 것을 막으려면 해당 학과 교수들에 대한 연구지원뿐 아니라 이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 등 직접적인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전국 74개 국공립·사립대 학과별 전공 신청자수 편차
1999년2000년2001년
전체 학부수415678508
전공간 지원자가 50명 이상 차이나는 학부수97210136
전체학부에서 이들 학부가 차지하는 비율 23.4%31.0%26.8%
편차=동일학부 내 전공신청 학생수가 가장 많은 전공-전공신청 학생수가 가장 적은 전공
자료제고:새천년민주당 설훈 의원 2001년 국회 국정감사 제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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