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주민증 위-변조 무방비…접착성시험 불합격 알고도 쉬쉬

  • 입력 2002년 12월 4일 18시 18분


조폐공사가 지난해 7월 행정자치부에 통보한 새 주민증 샘플 4개에 대한 품질 비교표. N, P, G사가 만든 주민증은 테이프 접착력 시험결과 규격 기준에 미달되는 X(불가) 판정을, C사는 △(보류) 판정을 받았다.
조폐공사가 지난해 7월 행정자치부에 통보한 새 주민증 샘플 4개에 대한 품질 비교표. N, P, G사가 만든 주민증은 테이프 접착력 시험결과 규격 기준에 미달되는 X(불가) 판정을, C사는 △(보류) 판정을 받았다.
행정자치부가 주민등록증 위·변조 예방을 위해 올해 초부터 새로 발급하고 있는 주민증이 졸속으로 제작돼 여전히 위·변조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행자부는 새 주민증의 코팅 접착성이 허술해 위·변조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사전에 통보받고도 발급 전 이를 개선하지 않았으며 발급 이후인 올 9월에는 접착성 기준을 아예 삭제, 부실한 주민증 발급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여전히 허술한 주민증〓행자부는 99년 말 갱신한 플라스틱 주민증의 표면이 아세톤 등 화학물질에 쉽게 훼손돼 위·변조가 잇따르자 올 2월부터 기존 주민증에 특수코팅을 한 새 주민증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보 취재팀이 4일 새 주민증 10장을 실험한 결과 새로 도입한 특수코팅도 역시 쉽게 벗겨져 여전히 위·변조가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험은 행자부가 지난해 초 주민증 발급기관인 한국조폐공사에 제시한 새 주민증 규격표에 따라 이뤄졌다. 이 규격은 새 주민증의 접착성에 대해 ‘표면에 칼로 격자무늬의 자국을 낸 뒤 스카치 테이프를 붙였다가 순간적으로 떼어냈을 때 이상이 없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취재팀이 규격표대로 실험한 결과 10장의 주민증 가운데 8장은 코팅이 벗겨졌으며 2장만이 벗겨지지 않았다.

▽부실 은폐 의혹〓문제는 행자부가 새 주민증 품질 개선을 추진하면서 주민증의 코팅 접착성이 크게 미흡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개선하지 않았다는 점.

취재팀이 입수한 조폐공사의 새 주민증 샘플 4개의 품질 비교표에 따르면 이 샘플 가운데 3개는 규격 기준에 미달되는 ×(불가) 판정을, 1개는 △(보류) 판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비교표는 조폐공사의 품질개선 대책팀이 새 주민증 개발 초기 여러 응찰 업체들로부터 주민증 샘플을 받아 품질 실험을 한 뒤 지난해 7월 행자부에 보낸 것이다.

행자부는 그러나 새 주민증의 접착성 문제를 올해 초 발급을 시작할 때까지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특히 발급을 시작한 지 7개월이 지난 올 9월 조폐공사가 한국화학시험연구원에 의뢰한 새 주민증 품질 검사표에는 접착성 검사 항목이 아예 빠진 것으로 나타나 부실을 은폐하려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에 대해 조폐공사 관계자는 “새 주민증 품질개선 과정에서 접착성이 미흡하다는 문제가 제기된 것은 사실”이라며 “규격표가 요구하는 수준의 접착성이 계속 나오지 않자 올 2월 예정된 새 주민증 발급에 차질이 생길 것을 걱정해 행자부측과 논의해 접착성 항목을 제외시켰다”고 털어놓았다.

국회 예결위 박종희(朴鐘熙·한나라당) 의원은 4일 “새 주민증의 코팅 부분이 벗겨져 여전히 위·변조가 가능하다면 많은 돈을 들여 새 주민증을 발급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행자부는 올 2월23일부터 9월까지 새 주민증을 224만여장 발급했다. 새 주민증 제조 단가는 487원으로 9월까지 발급한 주민증의 총 발급 비용은 10억9500만원에 이른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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