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소래포구, 어물전…추억이 서린 포구

  • 입력 2002년 10월 20일 17시 57분


갯벌과 짠물이 섞인 갯내음. 어물전 좌판에서 파닥거리는 왕새우 꽃게 광어 우럭 등 생선, 그리고 협궤열차(수인선)가 다니던 소래 철교. 일제 등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세워진 댕구산 포대 등….

수도권 제일의 관광어촌인 인천 남동구 논현동 ‘소래포구’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풍경들이다.

수도권 시민들의 애환과 추억이 서려 있는 소래포구의 이름이 알려지지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일제는 경기 이천 등의 쌀과 소래, 군자 등에서 생산된 천일염(天日鹽·염전에서 바닷물을 끌어 햇볕과 바람으로 수분을 증발시켜 만든 소금) 등을 수탈하려고 수인선(수원∼인천) 철도를 놓는다. 이 때 소래포구에 소금을 실어 나르던 돛단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6·25 전쟁이 끝난 뒤 소래포구에는 황해도 등에서 내려 온 실향민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대거 몰렸다. 실향민들은 10여척의 나룻배를 이용해 팔미도 영흥도 선제도 시화호 인근 해역에 나가 고기를 잡아 부평과 서울 등에 내다 팔았다.

70년 초 어민들은 소래포구를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자 물양장(배에 실린 생선, 유류 등을 하역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기도 했다.

오늘날 소래포구의 명성은 협궤열차가 있어 가능했다. 시속 60㎞ 정도로 뒤뚱거리며 달리는 협궤열차의 철길 폭은 72.6㎝. 그래서 사람들은 ‘꼬마열차’라고 불렀다. 이 철길은 95년 12월 31일 만성적자 노선이라는 이유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소래철교(소래∼시흥 월곶) 또한 서민들의 애환과 추억이 서린 곳. 만조시 철로나 침목을 밟으며 다리를 건너는 맛은 소래포구를 찾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줬다.

최근에는 소래포구 인근에 포대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소래철교가 시작하는 곳(소래포구쪽)의 오른쪽에 위치한 이 포대는 장도(獐島·인천시 문화재 자료 19호) 포대로 소래 토박이들 사이에는 ‘댕구산 포대’로 더 알려져 있다.

주민 김철주씨(81)는 “댕구산 포대가 있는 구릉에 올라가면 바다에 출어를 나간 배들이 갯골을 타고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수인선 철도공사를 벌이면서 댕구산 포대가 있던 곳의 일부가 허물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남동구는 2003년까지 10억원을 들여 수인선협궤열차전시장, 소래역사관을 건립해 소래포구를 역사가 살아 숨쉬는 관광지로 정비할 예정이다. 지난해 남동구청 앞 부지에 임시로 보관돼 있는 협궤열차는 7년여만에 자신의 고향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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