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임노순/국어 경시대회 輕視하는 사회

  • 입력 2002년 8월 4일 19시 56분


중학교에 다니는 조카가 전국 중·고교생 국어경시대회 인천시 대회에 학교대표로 뽑혔단다.

수학이나 과학경시대회는 널리 알려져 대회에 대비해 학교뿐 만 아니라 사설학원도 준비를 요란하게 한다. 그러나 한글의 바른 사용능력을 평가하는 국어경시대회는 아직 모르는 학생이 많다. 심지어 국어 교사들 조차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대학교 국어연구소가 주관하는 이 대회는 올해로 8회째를 맞고 있지만 아직도 생소하기만 한 것은 왜 일까.

국어가 무너지면 다른 학문도 무너진다는 사실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일 것이다. 맞춤법이 틀려도, 띄어쓰기를 못해도, 원고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도 지식을 측정하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고 사회적응에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조카가 대표로 선발된 이유는 학교 경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무슨 시험을 어떻게 보았는지 물어보았더니 주제에 따른 서술형 논술고사를 치렀다고 했다.

인천시 대회를 치르기 위한 대비는 선생님이 챙겨준 ‘대회실시계획’ 공문이 전부였다.

공문내용에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등 네 영역을 모두 평가하며 언어와 문학을 내용으로 평가하겠다’는 방침과 참고 도서자료가 예시되었을 뿐이었다. 대회 참가 학생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이유로 조카는 내게 도움을 청해 왔다. 대형서점을 뒤졌으나 국어 경시대회용 예상문제집을 찾을 수 없었다. 인터넷을 통해 서울대 국어연구소로 들어갔더니 기출 문제가 있어서 그나마 출제 의도나 경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역대 대회에서는 말하기 쓰기 각각 한 문제씩 두 문제만 출제됐다. 그러나 학교에서 치른 대회에선 말하기 분야 시험이 없었다고 한다.

말하기 분야는 교실에서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과 다를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능력과도 거리가 멀다.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논리적 사고가 아니라 창의성과 문화적 소통능력인 것이다.

일상생활에서의 국어능력이 활자매체 뿐 아니라 영상매체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 것을 감안하면 교사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할 일이 분명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구태의연한 지도법이 유지되고 있다. 국어는 철저하게 교과서 중심이며 구술은 뒷전이고 서술에만 의존하고 있다.

최근 서울대가 논술시험을 부활한다고 밝히자 일선 교육계가 들썩거린다. 서울대의 논술 시험 부활은 신입생의 논술과 구술 능력이 떨어진 현실 때문일 것이다.

비단 서울대 조치 때문 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국어능력 향상을 위해서도 초중고교는 학생들에게 말하기와 글쓰기 능력을 고루 키워 주어야 한다. 국어경시대회를 더 이상 경시하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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