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서해교전]꽃다운 젊음, 西海에 지다

  • 입력 2002년 6월 29일 22시 46분


29일 서해 해상에서의 북한의 도발로 20대 우리 해군 장병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성실하게 국방의 의무를 다하던 믿음직한 간성(干城)이었고 가족들에게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효자이자 자상한 아빠였다.

침몰된 아군 고속정 정장 윤영하(尹永夏·28) 대위는 96년 해군사관학교 50기로 임관했다. 해사 선배(18기)로 인헌무공훈장까지 받은 아버지 윤두호씨(61·예비역 대위)의 장남으로 중학교까지 영국에서 다녔으며 아버지를 따라 해군에 몸담았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지난해 해군참모총장 표창을 받은 윤 대위는 평소 조용한 성격에 동시통역을 할 정도로 영어에 능통하고 수영과 테니스 등 각종 운동에도 소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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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위는 14일 월드컵 한국-포르투갈전 직후 모방송 뉴스에 ‘백령도에서 월드컵을 잊고 나라를 수호하는 군인’으로 소개됐는데 이것이 가족들과의 마지막 ‘만남’이 됐다.

아버지 윤씨는 자신의 뒤를 따랐다가 숨진 아들의 주검 앞에서 슬픔을 애써 감춘 채 꿋꿋한 모습으로 가족들을 위로했다.

조천형(趙天衡·26) 하사는 지난해 11월 강혜정씨(29)와 결혼해 백일이 갓 지난 딸 시은이를 두었지만 이날 사랑하는 부인과 딸을 남겨두고 운명을 달리했다.

16일 시은이의 백일잔치 때 외박을 나와 “20일 후에 다시 오겠다”며 부대로 돌아간 조 하사는 그것이 딸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천형이는 대학(대전대 사회체육학과)을 다니다 학비 때문에 입대했어요. 제대를 해야 하는데 돈을 벌겠다며 부사관으로 직업 군인의 길을 택했는데….”

어머니 임형순씨(55)는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통합병원 영안실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서후원(徐厚源·22) 하사는 지난해 2월 대구기능대를 졸업한 뒤 7월 입대했다. 서 하사는 훈련을 나가거나 마치고 돌아오면 꼭 고향의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제대하면 잘 모실테니 농사일은 조금씩만 하시라”며 위로하던 효자였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서 하사의 경북 의성군 옥산면 전흥리 고향집에 있는 아버지 서영석(徐映錫·49)씨와 어머니 김정숙(金貞淑·48)씨가 오후 2시경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넋을 잃은 모습이었다.

황도현(黃道顯·22) 하사는 2000년 숭실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직후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며 입대했다가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게 됐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한 채 공사장 인부 등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한 성실한 젊은이로 친구들은 기억했다.

황 하사의 아버지 황은태씨(57)는 “이탈리아와 16강전을 하던 날 외출을 나와 한국팀을 열렬히 응원했는데…. 고생만 하다 저 세상으로 갔다”며 눈물을 훔쳤다.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전사4명 일계급 특진 추서▼

해군 당국은 29일 서해교전 과정에서 숨진 윤영하 대위 등 전사자 4명에 대해 일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전사자들의 장례는 해군장으로 치러지며 다음달 1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영결식을 갖고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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