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관사 대물림하나…일부 지방단체장 매각 약속 안지켜

  • 입력 2002년 6월 27일 18시 29분


95년 6월 첫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이후 대부분의 후보자와 당선자들은 “관선시대의 유물인 관사(官舍)를 처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민선 3기 자치단체장의 취임식을 앞두고 있는 지금도 단체장들의 관사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특히 1년 관리비가 억대에 이르는 호화 관사도 있어 관사를 시민을 위한 공간 등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황〓부산시장 관사는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 시절인 85년 ‘지방청와대’ 용도로 대지 5447평에 연건평 402평 규모로 건립됐다. 공시지가만 100억원이 넘고 연간 관리비가 8300여만원인 이 ‘궁전’에는 현재 안상영(安相英) 시장과 부인 등 2명만이 생활한다.

제주지사 관사도 부지 4545평에 연건평 529평 규모로 지어진 지방청와대용. 96년부터 문화공간 전환이 검토돼 지난해에는 우근민(禹瑾敏) 지사도 재확인했지만 실현되지 않고 있다.

김혁규(金爀珪) 경남지사는 관사가 대지 2900평에 연건평 240평이며 연 관리비가 1억원에 이르러 너무 호화롭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한때 “도민이 원하면 비우겠다”고 했으나 최근에는 “관사는 제2 집무실 성격이 있다”며 입장을 바꿨다.

심대평(沈大平) 충남지사는 시민단체 등의 요구에 따라 97년 관사에 ‘도사(道史) 박물관’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으나 시기는 언제 이뤄질지 모를 도청 이전 이후로 미뤄졌다.

이 밖에도 손학규(孫鶴圭) 경기지사, 이의근(李義根) 경북지사, 박태영(朴泰榮) 전남지사, 박광태(朴光泰) 광주시장, 이원종(李元鐘) 충북지사 당선자 등도 현재의 관사를 그대로 사용할 방침이다.

반면 관사를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보낸 단체장도 적지 않다.

심완구(沈完求) 울산시장은 관사를 95년 10월 ‘보육정보센터 및 공관 어린이집’으로, 최기선(崔箕善) 인천시장은 지난해 10월 ‘향토사료관’으로 바꾸고 자신들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염홍철(廉弘喆) 대전시장 당선자는 관사를 사회복지시설로 전환하고 자비로 아파트를 구입하기로 했는데 이 경우 연간 1억4000여만원의 예산이 절감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의 경우 고건(高建) 시장이 “서초구 원지동 추모공원에 공관을 짓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이명박(李明博) 당선자는 “관리비가 많이 들면 집에서 출퇴근할 생각”이라고 밝혀 유동적인 상태.

▽필요성 논란〓일부 단체장은 내외국 귀빈을 저렴하면서도 기품 있게 접대할 수 있다며 관사 찬양론을 펴고 있다.

하지만 재정 자립도가 낮은 우리 실정에서 호화관사는 낭비일 뿐이며 오히려 ‘은밀한 거래’의 장소로 전락할 우려가 많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실제 각종 암행 감찰도 관사 주변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충북대 강형기(姜瑩基·지방행정) 교수는 “전근이 잦은 임명직 공무원들이라면 몰라도 민선 단체장의 경우 관사가 그다지 필요치 않다”며 “관사는 일제의 잔재지만 일본의 경우 오히려 대부분 없어졌고 일부는 자치단체의 재정 충당을 위해 기업 등에 임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이재명(李在明) 투명사회팀장은 “단체장의 호화관사는 권위의 상징이고 청산해야 할 구시대의 잔재”라며 ‘관사무용론’을 폈다.

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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