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리포트]박미향/사라지는 학교저축 되살리자

  • 입력 2002년 5월 6일 00시 09분


5녀 1남 중 셋째 딸인 나는 어려서부터 새 옷을 입어본 적이 거의 없다.

1년에 한번 얻어 입는 설빔 외에는 전부 언니들로부터 물려 입었다. 간혹 언니와 같은 날 미술 수업이라도 있으면 언니 교실을 찾아가 크레파스나 물감을 받아와야 했다. 가끔 불평을 늘어놓는 나에게 어머니는 “티끌 모아 태산”이라며 달래주곤 하셨다.

우리 집 안방 선반 위에는 빨간 돼지 저금통 여러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우리는 서로 무게를 비교하며 동전만 생기면 넣곤 했다. 부모님께서는 종종 심부름값으로 10원이나 50원짜리 동전을 주시곤 했기 때문에 아침이면 아버지의 구두를 서로 닦겠다고 다투기도 했다.

예전에 비해 물질적으로 풍족해진 탓인지 요즘 아이들 중에는 물건이나 돈을 쉽게 여기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올해 중학생이 된 맏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만해도 학교에서 저축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주 1회 저축하는 날이 정해져 있어 알림장에 꼬박꼬박 ‘저금 가져 오기’라고 적어 왔다. 그래서 맏딸은 집안 잔심부름 등을 하며 용돈을 모아 규칙적으로 학교에서 저축을 했다.

그런데 맏딸과 세 살 터울인 둘째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에는 이런 제도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자연히 둘째딸은 학교에서 만든 예금통장을 가져보지 못했다. 부천시내 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학교 저축이 없어진 것은 교사 잡무를 줄이자는 것과 어린이들의 현금 분실사고가 주된 이유”라고 말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대부분 이같은 현상에 대해 안타까워 하고 있다.

한 어머니는 “학교 저축은 어릴 때부터 절약하는 습관을 길러 줄 수 있는 좋은 제도”라며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서 없애는 것보다는 개선을 통해 본래 취지를 최대한 살려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저축과 절약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학교만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갈수록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시계추처럼 오가야 하다보니 여기에 공을 들일 수 있는 가정은 많지 않은 형편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학교 저축이 사라져 현재 부천시내 초등학교 40여 군데 가운데 한 학교의 예금업무만 취급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학교에서 원한다면 언제든지 은행원이 현장에 가서 수납할 수 있지만 관심이 예전만 못하다”고 말했다.

저축은 어린 학생들에게는 돈의 가치를 제대로 알게 해 주고 절약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어린이가 집안일을 돕는 등 스스로 용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찾게 하여 독립심을 키울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다.

‘학교 저축’처럼 교육적 가치가 높은 것은 가정과의 협력을 통해 보완 유지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미향(37·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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