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어린이 인권(下)]열악한 아동복지 시설-인력

  • 입력 2002년 5월 3일 18시 24분


“이제 아동 인권 보호의 첫 걸음을 내디뎠을 뿐 갈 길이 멀다.”

아동 인권 보호에 대한 한국의 현주소를 전문가들은 이렇게 표현한다.

2000년 7월13일 개정 아동복지법이 시행되면서 한국은 비로소 아동 학대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전에는 시립 및 도립 아동상담소와 문화관광부 산하 청소년상담실을 통해 버려지거나 가출한 아이들에 대해 보호시설 입소나 상담 등을 해주는 게 국가가 하는 활동의 전부였다. 91년 유엔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을 비준해 각종 착취와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겠다고 선언한 국가치곤 출발이 늦은 셈이다.

▼글 싣는 순서▼

- <中>학대아동 보호기관 '그룹홈'
- <上>학대신고 작년 4133건

개정 아동복지법에 따라 2000년 10월부터 전국 16개 시도에 17개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아동학대예방센터’란 이름으로 생겨났다.

이 가운데 3곳은 시가 설치했고 나머지 14곳은 민간기관이다. 그동안 꾸준히 아동보호 활동을 펼쳐온 한국어린이보호재단, 한국복지재단, 한국이웃사랑회 등 민간기관을 정부가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지정한 것. 그러나 예방센터의 인력과 재정은 제대로 활동하기엔 사정이 좋지 못하다.

센터 한 곳의 전문인력은 8, 9명 선으로 이들이 한 시 또는 한 도의 모든 아동학대 신고 사례를 처리해야 한다.

수원시에 센터가 있는 경기도의 인구는 약 900만명으로 전문인력은 단 8명에 불과하다.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인구 800만명의 미국 뉴욕주의 경우 아동보호 직원이 8000명에 이른다.

일본의 경우도 현(縣) 이상의 행정구역에 모두 174개의 공립아동상담소를 설치해 아동학대방지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각 센터의 재정은 정부에서 50%, 지방에서 50%씩을 부담한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모두 14억여원을 지원받았지만 전문인력의 월급을 주기도 빠듯하다.

또 학대를 유발하는 요인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부모들에 대한 대안적 양육방법의 교육과 지원서비스, 더 나아가 치료 등이 필요하지만 지금의 형편으로는 어렵다.

이호균(李好均) 한국이웃사랑회 아동학대문제연구소 소장은 “지난해 신고된 아동학대의 80%가량이 부모에 의한 것”이라며 “가정 내의 학대는 단순히 아이를 부모와 떼어놓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학대를 유발하는 원인을 찾아 치료하고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현행법상 신고의 의무가 있는 의사와 교사 및 사회시설 종사자 등에게 단지 양심상의 책임만 지우는 것도 아동학대를 방조한다는 지적이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노충래(盧忠來) 교수는 “지난해 의사가 신고한 경우는 전체의 1% 정도에 불과했다”며 “미국은 학대 아동을 1차적으로 진단할 의사들이 제대로 신고하지 않을 때 면허증을 반납하도록 하는 등 엄격하게 규제한다”고 말했다.

이명숙(李明淑) 변호사는 아동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부의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최근 사회적 합의도 없이 ‘학교 체벌’을 다시 용인하려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아동 학대에 대한 국민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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