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성익/영재교육 인프라가 없다

  • 입력 2002년 4월 11일 18시 30분


10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주재로 12개 부처가 참석한 가운데 보고된 영재의 조기 발굴 및 육성에 관한 인적자원개발 시행 계획을 살펴보면 금년 2학기부터 전국에 134개 영재학급과 67개 영재교육원이 설치된다. 초중고교생 1만여명이 영재교육을 받게 되며 부산과학고가 금년 가을 신입생 144명을 선발해 내년 3월 영재학교로 운영된다. 이로써 우리나라에서도 금년 2학기부터 영재교육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전망이다.

1970년대 고교평준화 정책을 시행한 이래로, 학생들의 잠재능력과 탁월한 재능을 무시한 채 운영되어 온 학교 교육에서 영재들이 마땅히 발붙일 교육마당이 없었다. 그러나 2학기부터 영재학급과 영재교육원을 거국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영재들의 학습욕구를 충족시키고 재능을 계발시킬 수 있게 되었다. 선진 외국에 비하면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21세기 교육 비전을 구현하려는 교육 당국의 적절한 결단이다. 한국 교육도 이제 선진국형 교육체제로 발전하는 계기가 마련되어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문교사 학습자료 태부족▼

그러나 현재 영재교육 인프라가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영재담당 전문교사의 수는 지난해부터 교육부 주관으로 방학을 이용해 60∼120시간 정도의 일반연수를 실시한 300여명 정도다. 그리고 영재교육 프로그램 및 교수·학습자료는 한국교육개발원에서 개발된 초중고교용 70여종이 있으나 영재들의 다양한 잠재능력과 재능을 판별할 수 있는 도구는 단지 몇 종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전문적인 영재 육성을 위한 맞춤교육은 사실상 어려운 형편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및 교원 연수를 총괄하는 ‘영재교육연구원’의 설립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영재교육을 내실화하는 데 또 다른 어려움은 각 시도 교육청과 대학, 그리고 각급 학교에서 운영하는 영재학급과 영재교육원의 영재교육 프로그램들이 기관별로 자율적으로 편성 운영되다보니 상호 연계성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일정 지역 내에서 초등 중등 고등 과정의 영재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제공받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지속적인 영재의 발굴과 개발을 위해서는 영재교육기관들 간의 영재교육 프로그램이 유기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영재교육 체제를 강구해야 한다.

2학기부터 전국에서 영재교육을 받게 될 초중고교생은 전체 학생의 0.1%에 해당하는 1만여명이다. 그러나 영재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선진국의 경우 영재 학생 비율이 전체 학생의 3%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는바, 우리나라에서 전체 학생의 1%만 영재로 간주해도 10만명에 이른다. 그러므로 2학기부터 영재교육을 받게 되는 영재학생들의 수가 결코 많은 것이 아니다. 적어도 9만여명의 영재들은 그들의 잠재능력과 재능을 발현할 수 있는 영재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국가의 인적자원 개발 면에서도 큰 손실이므로 앞으로 영재학교나 학급 등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편 영재학급과 영재교육원의 교육프로그램은 방과후나 주말, 방학, 특별활동시간을 이용해 수학, 과학, 예능별로 주당 1∼8시간씩 실시하는 시간제(pull out) 영재교육 프로그램이다. 영재들의 조기 진급이나 조기 졸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학교 전체의 교육과정이 영재교육으로 짜이는 전일제 영재학급과 영재학교의 확충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정부 팔걷고 지원 나설때▼

더 나아가 초중고교 수준에서만 실시되는 영재교육을 대학교육 단계에까지 연계시켜야 할 것이다. 즉, 고교 이후의 영재교육이 절름발이가 되지 않도록 대학교육까지 영재교육의 연동체제가 구축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요청된다. 현재 과학분야의 영재들은 과학고에서 한국과학기술원으로의 진학 문호가 열려 있으나 보다 많은 과학영재들이 입시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대학으로 쉽게 진학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영재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무엇보다도 영재담당 전문교사의 확보 및 연수, 영재 교수·학습자료의 개발, 그리고 영재학교·학급·교육원의 확충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성공적인 영재교육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행정·재정적 지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줌으로써 21세기를 이끌고 갈 창의적인 고급 인적자원 개발이 구두선으로 끝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박성익 서울대 교수·교육학·한국영재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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