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출범 한 달 '절반의 성공'

  • 입력 2001년 12월 23일 18시 04분


국가 공권력과 사회적 차별 행위에 의한 인권침해를 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金昌國 변호사)가 26일로 출범 한 달을 맞는다.

여전히 직제조차 확정되지 않아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지만 진정 접수와 일부 현장조사 등 ‘절반의 활동’은 계속하고 있다.

▽활동과 성과〓지금까지 인권위가 접수한 진정은 800여건이며 단순 상담 및 전화 문의까지 합하면 약 2000건에 이른다. 이중 예비 검토를 끝낸 것은 694건.

3일에는 경북 청송감호소와 울산구치소에 수감 도중 숨지거나 다친 사람들에 대한 첫 현장조사를 벌였다.

이를 통해 울산구치소에서 숨진 구모씨(41)에 대한 재부검을 실시, 구씨가 폭행 등 가혹행위에 의해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를 끌어내기도 했다.

인권위원들은 대구 광주 목포 공주교도소 등에 직접 내려가 재소자들의 진정을 접수했다.최영애(崔永愛) 인권위 준비기획단장은 “인권위의 최대 성과는 출범 그 자체”라고 말했다. 즉 “국민에게 ‘인권’에 대한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줬다”는 게 인권위의 자평이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吳昌翼) 사무국장은 “수사기관이나 교정시설 등이 긴장하고 인권위 활동에 대해 뭔가 준비하게 만들었다는 자체가 기분좋은 변화”라고 평가했다.

▽불안한 출발〓인권위는 출범 전부터 조직규모와 직원채용 방식 등을 놓고 행정자치부 등과 갈등을 빚었다.

인권위는 정원 439명을 요구했다가 321명과 1실 4국 체제로 한 발 물러섰으나 행자부는 127명에 1실 1국 체제 주장을 고수했다.

또 인권 및 시민단체 활동 경력을 인정해 5급 이상의 공무원으로 채용할 수 있게 한 인권위의 직원특례규정에 대해서도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 등이 거세게 반발했다.

인권위는 결국 사무처 구성도 못한 채 11명의 인권위원과 자원활동가만으로 문을 열었다.

▽전망과 과제〓이에 따라 직제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꼽힌다. 20일 사무총장 직급을 ‘차관급 정무직’으로 하는 인권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마저 무산돼 내년 초 사무처 출범에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인권위 고위 관계자는 “개정안이 통과됐다면 직원수 250명 선에서 행자부와 타협할 의사도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법무부 등 일부 부처와의 영역 중복과 수사,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종결된 사안에 대해 조사할 수 없는 등 제한된 인권위 권한도 풀어야 할 숙제다.

또 인권전문가들은 인권위가 ‘문턱’을 최대한 낮춰 겸손한 자세로 임해야 하며 내부 조직을 민주화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충고한다.

국민대 법학과 이재승(李在承) 교수는 “인권위가 젊은 민간 활동가들을 촉탁이나 별정직 등으로 대폭 채용하는 등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조직이 돼야 다른 관료조직의 압력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인권운동사랑방 유은숙(柳殷淑) 사무국장은 “힘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명심해 투명하고 겸허한 기구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동용기자>min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