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름 잊으려 돌탑쌓지요”…6·25때 자식-동생 잃어

  • 입력 2001년 12월 14일 17시 57분


14일 오전 5시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북한산 등산로. 여느 때처럼 배낭을 메고 손에 작은 쌀포대를 든 노인이 아직도 캄캄한 산길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팡이에 의지한 가냘픈 노인의 몸은 금세 땀으로 흠뻑 젖었다.

30여분만에 산 중턱 약수터에 도착한 노인이 풀어헤친 배낭과 쌀포대 속에서는 한 무더기의 돌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돌을 하나씩 주워 약수터 주변에 세워지고 있는 돌탑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기 시작했다.

“이때만큼은 세상 시름을 다 잊을 수 있거든. 등산객들도 뭔가 느낄 것 같고…. 다른 이유는 없어.”

전순천(全順天·79·서울 성동구 왕십리1동)씨는 ‘돌탑 쌓는 노인’으로 통한다. 그동안 전씨가 약수터 주변에 쌓은 돌탑은 모두 11개.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가진 수천개의 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높이 1∼3m의 돌탑들은 이곳을 찾는 등산객들의 탄성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돌탑을 쌓는 사람이 전씨라는 사실을 아는 등산객은 그리 많지 않다.

전씨가 돌탑을 쌓기 시작한 것은 20여년 전. 평생을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전씨는 일이 없는 날이면 산에 올라 고단한 심신을 달랬다. 어느 날 힘겨운 ‘삶의 무게’를 잠시 잊을 요량으로 약수터 근처에 돌탑을 쌓기 시작한 것.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의 매일 산에 올랐지. 왠지 하루라도 돌을 올려놓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거든.”

6개월만에 ‘첫 작품’이 완성됐다. 배낭과 비닐봉투에 돌을 가득 담아 산 중턱까지 옮기는 작업이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여러번이었다. 성치 않은 몸을 염려해 가족들도 반대했다. 그러나 돌탑을 보면서 흐뭇해하는 등산객들의 모습에 힘을 얻어 꾸준히 산에 올랐다. 이후 돌탑은 매년 1, 2개씩 늘어갔다.

거센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돌탑에 감탄한 등산객들이 ‘건축 요령’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전씨는 “비법은 없고 돌 하나 하나에 정성을 다해 쌓을 뿐”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전씨의 돌탑에는 가슴 아픈 사연도 배어 있다. 6·25전쟁 때 전씨가 군에 간 사이에 아내는 어린 세 아들과 딸을 데리고 무작정 피란길에 올랐다.

“경기 광주시의 한 도로변에서 폭격으로 세 아들이 모두 죽었어.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듣고 피눈물을 흘렸지만 어쩌겠어.” 그후 하나뿐인 남동생마저 전쟁터로 끌려가 지금까지 생사를 알 수 없다.

전씨는 “돌탑을 쌓으면서 비명에 간 자식들과 동생이 저 세상에서나마 편히 지내기를 기원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젠 기력이 쇠해 조금만 걸어도 무릎과 허리가 아파오지만 전씨는 눈을 감는 날까지 탑 쌓기를 계속할 생각이다.

“갈수록 세상이 각박해지고 사람들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 같아. 가끔씩 뒤도 돌아보면 요즘처럼 세상이 시끄럽지도 않을텐데….”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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