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어쩌다 이지경까지 中]위기의 뿌리는 人事

  • 입력 2001년 11월 18일 18시 26분


검찰은 수사권을 엄정히 행사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한 뒤 처벌 여부를 가리는 준(準)사법기관이다.

수사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공정하고 투명한 과정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검찰은 그러나 지난해 ‘진승현(陳承鉉) 게이트’ 수사 당시 돈을 줬다는 진술이 나온 여당 의원 등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진실규명’이라는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 저버린 것이다.

검찰의 이 같은 ‘자기 부정’은 처음이 아니다. 99년 5월 옷로비 의혹 사건에 관한 서울지검의 1차 수사 때는 법무부장관 부인이 고소한 사건을 처리하면서 ‘장관 부인 빼돌리기’ 등 으로 숱한 비난을 받았다. 지난해 5월 지앤지 회장 이용호(李容湖)씨도 긴급체포와 압수수색을 하고도 다음날 바로 풀어줬다.

‘정현준(鄭炫埈) 게이트’ 수사에서는 국가정보원 김은성(金銀星) 전 2차장과 김형윤(金亨允) 전 경제단장의 금품수수 진술 조서를 받아놓고도 묵살했다.

▼연재순서▼

- <上>참담한 검사들
- <中>위기의 뿌리는 人事
- <下>위기극복 방안

현 정부의 검찰에서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정치권력의 입김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지적돼 왔지만 내부적으로는 ‘인사(人事)’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진다.

‘진승현-정현준-이용호 게이트’나 99년 옷 로비 사건 수사는 대부분 특정 지역 출신 검사와 검찰 간부들이 수사를 주도했다.

이용호 게이트에서 수사 지휘선상에 있다가 적절치 못한 처신과 수사 지휘로 사퇴한 검찰 간부들은 모두 특정 지역 출신이었다. ‘정현준 게이트’도 수사검사를 제외하면 부장검사-3차장으로 이어지는 지휘 보고라인을 특정지역 출신이 독점했다.

물론 이들이 요직을 맡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들 중에는 과거 정권에서 소외됐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경우도 적지 않아 형평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의 요직 기용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 내용과 정도가 문제다. 이들은 자신의 인적 자원이나 역량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요직을 독점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별한 경험이나 역량도 없이 ‘벼락출세’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내부 견제기능의 마비다. ‘끼리끼리’ 지휘체계를 갖추다 보니 누구 하나 나서서 수사 과정이나 절차의 문제점 등을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는 상황이 초래됐다는 것이 일선 검사들의 지적이다.

법조인들은 최근 김원치(金源治) 대검 형사부장이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 부장은 “만약 부하를 능력 대신 출신지나 친분 청탁으로 발탁한다면 검찰이 아니라 패거리, 깡패조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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