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정현준(鄭炫埈) 게이트’ ‘진승현(陳承鉉) 게이트’와 관련해 정 관계 로비를 축소 수사한 사실이 드러나자 16일 대검의 한 간부는 “한마디로 참담하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팀이 돈을 줬다는 진술을 받고도 그냥 덮어버린 것은 상식 밖의 수사이고 이로 인해 검찰이 앞으로 어디까지 추락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 이 간부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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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 "간판을 내려야 할 상황" |
검찰은 그동안 특별검사제의 도입을 막기 위해 공식 비공식 창구를 통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여야는 이날 특별검사제 법안 제정에 합의했다. 야당이 주도하는 특검제 법안에 여당이 쉽게 합의하지 않으리라고 기대했던 검찰은 축소 은폐 수사 의혹이 제기되자 기대를 포기해야 했다.
서울지검의 한 간부는 “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사건을 검찰이 불투명하게 처리한 데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여당도 검찰을 저버리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국면”이라고 말했다.
재수사를 맡은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들은 더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한 검사는 “서울지검 특수부를 ‘재수사 전담 수사부’로 바꿔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검사직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며 한숨을 쉬었다.
검찰 고위급 간부들은 이날 재수사 결정 이후 대책을 논의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유럽 검찰총장회의에 참석하고 이날 출근한 신승남(愼承男) 검찰총장은 귀국하자마자 김대웅(金大雄) 서울지검장을 만나 오전 내내 재수사와 그에 따른 문제점들을 숙의했다.
▼연재순서▼ |
이런 가운데 일선 검사들 사이에는 ‘정면 돌파론’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수원지검의 한 검사는 “검찰이 이번 수사를 잘못하면 검찰이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질 수 있다”며 “이런 때일수록 핵심 권력자의 비리 혐의가 적발되면 가리지말고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지검이 여당 의원과 국정원 과장의 비리의혹에 대해서만 재수사한다는 방침이 알려지자 이에 대해 반발하는 평검사들의 기류도 확산되고 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언론에 의혹이 제기된 부분만 재수사하는 것은 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기형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이 1년 가까이 덮어두었던 국정원 간부들과 여당 의원의 비리의혹이 이제 와서 불거진데 대해 “국정원의 갈등과 집권 말기 권력누수로 그동안 통제됐던 정보가 새어나오는 현상과도 무관치 않다”는 말도 들리는 등 검찰 내부는 뒤숭숭하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과거에는 검찰이 위기를 예측하고 관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디까지 검찰이 상처를 입을지 알 수 없다”고 현 위기상황을 설명했다.
<정위용기자>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