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윤리지침 쟁점]'회생불능땐 치료 중단 기준 모호'

  • 입력 2001년 11월 16일 01시 03분


대한의사협회가 15일 공포한 의사윤리지침 내용 중 △소극적 안락사 인정 △낙태 △대리모 △뇌사 등에 관한 일부 지침이 현행법에 어긋나거나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결정돼 생명 윤리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의협은 일부 실정법에 저촉되는 내용이 있으나 의료 현장에서 상당 부분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의사들에게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의사들이 실정법을 어기면 강력히 대처한다는 견해를 지키고 있어 마찰이 예상된다.

▽소극적 안락사〓의사윤리지침 중 가장 민감한 사안이다. 의협은 “말기암 등 회생이 불가능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인간적 존엄성을 잃지 않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무의미한 생명연장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필요한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아 환자가 사망하는 ‘소극적 안락사(부작위에 의한 안락사)’와는 다르다는 것.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이 지침이 형법의 촉탁 승낙에 의한 살인죄에 해당한다는 견해다. 비록 환자나 가족 등 대리인의 문서 요구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소극적 안락사’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또 환자의 회생 불능 상태에 대한 판단 기준도 논란거리다. 98년 5월 아내의 요구에 따라 환자를 퇴원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보라매병원 의사가 살인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에서 보듯이 회생 불능 상태에 대한 판단은 의사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은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할 경우 생명 경시 풍조가 확산될 것이 뻔하고 명확한 기준이 없어 결국 살인행위에 다름없다”고 반대의견을 밝혔다.

▽낙태〓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임신부나 배우자가 간질 혈우병 등 유전성 질환자인 경우 △임신부나 배우자가 에이즈 간염 등 법정전염병 환자인 경우 △성폭력에 의한 임신 △친족간 임신 △임신이 모체의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는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각 병원에서 낙태시술이 만연해 이 조항이 사문화했다고 해도 위법행위를 허용하는 지침은 낙태반대 운동을 펼치는 종교계 등으로부터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또 14일 법원이 독극물을 이용해 낙태시술한 의사에 대해 살인죄를 적용한 사례에서 보듯이 낙태 인정 범위도 모호하다.

전현희(全賢姬) 변호사는 “낙태가 광범하게 이뤄진다 해도 의협 지침이 허용한 낙태는 원칙적으로 위법이며 사회적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현행법상 금지된 낙태를 한 의사를 처벌하고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의사는 면허 취소 처분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견해다.

▽대리모와 인공수정〓현행법상 인공수정과 대리모 행위에 관한 법 조항은 없다. 다만 민법에 규정한 ‘선량한 풍속이나 기타 사회질서 위반 행위’에 해당해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 견해다. 또 대리모 인정은 차후 ‘엄마가 누구냐’는 모권 분쟁의 불씨를 남기게 된다. 윤리지침은 또 금전적 거래가 없는 친족간의 대리모 관계 등은 허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역시 논란이 불가피하다. 의협의 이윤성(李允盛) 전 법제이사는 “윤리적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아이를 원하는 부모의 소망이 간절하고 실제로 많은 불임부부가 대리모를 이용하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뇌사〓윤리지침은 뇌사를 심장사와 더불어 죽음의 기준으로 인정했다. 뇌사도 회복 불가능한 환자로 규정, 무의미한 의료행위를 줄이자는 취지다. 그러나 현행 ‘장기 등 이식에 대한 법률’에 따르면 장기이식 목적인 경우에만 뇌사를 한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또 임의로 뇌사자를 사망한 것으로 선언하거나 사망시점이 인위적으로 바뀌는 일도 생길 수 있어 법적 분쟁이 빈발할 가능성도 크다.

<문철·이호갑기자>full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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