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몰래녹음 공포'확산]"혹시 내말도 녹음기에…"

  • 입력 2001년 10월 19일 18시 49분


‘몰래 카메라’에 이어 ‘몰래 녹음’ 공포가 이어지고 있다.

벤처기업 주식분쟁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부장검사와 진정인과의 ‘부적절한’ 대화내용에 대한 녹취록이 공개돼 부장검사가 사표를 낸 이후 일부 검사들은 ‘자나깨나 녹음 조심’이라며 한숨을 짓는다. 서울지검의 한 간부 검사는 “상대방이 몰래 녹음하는지를 알 수 있는 ‘녹음기 탐지기’같은 것은 없느냐”고 묻기도 했다.

검찰은 이전에도 ‘녹음’ 때문에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92년 12월 부산기관장 대책모임 사건. 당시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김기춘(金淇春·현 한나라당 의원) 법무부 장관은 “여기(부산)서 똘똘 뭉쳐야 한다”는 등의 지역감정 유발 발언을 했고 국민당 당원들이 이 발언을 그대로 녹음하는 바람에 기소되는 등 곤욕을 치렀다.

이들 사건 외에도 검찰과 법원 주변에서는 ‘녹취’가 일상사처럼 행해진다. 민사재판에서도 녹취록이 약방의 감초처럼 증거자료로 등장한다.

최근에는 볼펜크기의 소형 고성능 녹음기가 등장한데다 휴대전화로도 녹음이 가능케 되는 등 녹음기술과 방법이 발달해 녹음이 더 광범위하게 이뤄진다.

그러나 ‘몰래 녹음’도 ‘몰래 카메라’의 경우처럼 단속 및 처벌근거가 뚜렷하지 않다.

몰래 카메라의 경우 98년 12월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카메라 등으로 성적 욕망과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촬영한 경우’를 처벌하는 조항(14조의 2항)이 신설됐지만 요건이 까다로워 적용범위가 넓지 않다.

‘몰래 녹음’의 처벌근거는 통신비밀보호법 14조. 그러나 이 조항은 ‘타인간의’ 대화를 제3자가 녹음하는 경우에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벤처기업 주식분쟁 사건의 경우처럼 대화 당사자(진정인)가 대화 상대방(김진태·金鎭泰 전 수원지검 부장검사)의 말을 녹음하는 것은 처벌대상이 되지 않는다. 92년 12월 김기춘의원 사건 때에는 이 조항도 없어서 몰래 녹음한 국민당 당원들을 ‘주거침입죄’로 처벌하는데 그쳤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재판을 하다 보면 수많은 녹취록이 제출되는데 특정 목적을 갖고 의도적으로 녹음을 따서 편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녹취록은 잘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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