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 게이트/CB 실체는…]합법투자 너울 쓴 '검은 돈줄'

  • 입력 2001년 9월 20일 18시 32분


《검찰이 이용호(李容湖)씨의 ‘삼애인더스 해외 전환사채(CB)’에 대한 전면 수사에 나섬으로써 ‘신종 뇌물’로 주목받아온 CB 비리의 실체가 드러날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한 증권사 직원은 “업계에서는 상당히 보편화한 수법인데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CB거래가 가차명 계좌를 통해 비밀리에 이뤄져 노출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

CB의 장점은 위험이 적은 반면 기대수익이 높다는 점. 처음 발행될 때처럼 채권으로 계속 가지고 있으면 만기에 원금과 이자를 받게 되므로 손해볼 염려가 없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주가가 많이 오르면 처음에 정해진 가격(전환가격)을 기준으로 주식으로 바꿔 팔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

또 CB거래는 인수대금을 주고 매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외형상 합법적인 ‘투자’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같은 장점 때문에 CB는 기업주와 정관계 실력자들의 ‘검은 공생’의 매개로 이용되기에 적당하다는 것이다. 이씨의 삼애인더스 해외 CB 발행과 주가조작 사건은 이 같은 CB비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900만달러의 해외 CB를 발행한 뒤 CB의 주식전환이 가능해진 올해 1월 CB 일부(약 3분의 1)를 정관계 인사들에게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주가는 5000원대였고 주식전환 가격은 2538원. CB인수자들은 인수 직후인 1월29일부터 4일간에 걸쳐 CB를 모두 주식으로 전환했다. 이로써 이들은 이씨 계열사의 주주가 됐다. 삼애인더스 주식에 관한 한 ‘공동운명체’가 된 것이다.

이씨는 본격적인 ‘작전’에 나섰다. 전남 진도군 죽도 앞 바다에 가라앉은 금괴운반선 발굴 추진 사업을 증권거래소에 공시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재료’를 공식 오픈한 것이다.

이때부터 주가는 급등하기 시작해 보름만에 5배 이상 올랐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보통 주가조작을 할 때에는 이것저것 살피면서 신중하게 하는데 이씨의 경우 뒤에 있는 든든한 배경을 믿은 탓인지 무식하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과감하게 주가를 올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 정도면 당장 감독기관의 특검이나 조사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조사나 제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CB 분배’의 ‘효과’가 나타났다는 의심이 들만한 부분이다.

법조계에서는 정관계 인사들이 CB를 인수할 때 정상적인 가격을 지불했더라도 전환가격과 당시 주가와의 차액(주당 약 2500원, 5000-2538원)을 뇌물액수로 볼 수 있으며 주가상승을 확실히 예견했다면 시세차익도 뇌물로 볼 소지가 있다고 말한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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