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어머니 대신 행상 또 병역기피 공익요원 집유 재선고

  • 입력 2001년 5월 10일 18시 45분


‘유전면제(有錢免除)냐, 무전유죄(無錢有罪)냐.’

돈을 써서 병역을 기피하는 몹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돈이 없어서 군대를 갈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병중의 어머니를 대신해 공익근무를 빼먹고 행상에 나섰다가 병역의무기피로 구속기소된 20대 가장에게 법원이 이례적으로 선처를 베풀었다.

운동선수가 꿈이던 정모씨(25)는 무리한 연습으로 허리를 다쳐 98년 공익근무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징집영장을 받고도 집을 떠나지 못했다.

길거리에서 호두과자를 팔던 아버지는 가출했고 어머니마저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입대를 못하고 돈벌이에 나선 정씨는 결국 병역법위반 혐의로 기소돼 99년 4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죄값’을 치르고 다시 공익근무를 시작했지만 어머니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마지막 재산인 단칸방까지 내놓는 등 상황이 더욱 악화되자 정씨는 어머니 대신 호두과자 손수레를 잡았다. 이 때문에 8일 동안 공익근무에 나가지 않은 혐의로 다시 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병든 몸을 이끌고 구치소를 오가던 정씨의 어머니는 “나약한 에미를 봐서라도 아들을 용서해 달라”는 탄원서를 법원에 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불평 한마디 없이 노점상 일을 도우면서 결국 대학진학도 포기한 채 가정을 돌봐온 착한 아들을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정씨도 반성문을 통해 “눈물을 닦아드리지도 못한 채 구치소 유리벽 사이로 편찮은 어머니를 바라만 보다 몇 분 내에 돌아서야 하는 불효자의 마음이 찢어진다”며 용서를 구했다.

2심 재판부인 서울지법 항소6부(주기동·朱基東부장판사)는 10일 “딱한 사정을 참작한다”며 정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를 선고했다. 집행유예 기간중 같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피고인에게 다시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드문 일이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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