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적 임의동행도 사실상 불법체포"

  • 입력 2001년 2월 11일 18시 49분


임의동행을 거부하는 피의자를 물리적 힘을 써서 연행하지 않았더라도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피의자가 거부의사를 포기하도록 만들었다면 불법체포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1부(주심 배기원·裵淇源대법관)는 1월30일 불법체포 및 불법감금 혐의로 법원의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져 재판에 회부된 검찰 공무원 조모피고인(39)의 상고를 기각, 불법체포에 대해 유죄를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조씨는 93년 3월 서울 중구 모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법 위반혐의를 받고 있던 정모씨를 법원의 체포영장 없이 연행하려 했으나 임의동행을 거부하자 다른 수사관들과 함께 정씨의 팔짱을 끼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6m 가량을 강제로 끌고 나왔으며 이후 임의동행을 수락한 정씨를 승용차 뒷좌석 중간에 태우고 검찰청사로 연행했다.

정씨는 하루 동안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은 뒤 조씨를 검찰에 고소했고 검찰이 조씨를 기소하지 않자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팔짱을 끼고 간 거리가 6m에 불과하고 이후는 정씨의 동의를 받았으므로 불법체포로 볼 수 없다”며 불법감금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조씨의 항소심 재판부는 99년 9월 “체포는 사람의 신체에 대해 직접적 현실적 구속을 가하는 행위로서 그 수단은 유무형적인 것을 모두 포함한다”며 “조씨가 임의동행을 거부하는 피의자 정모씨에게 ‘이렇게 하면 재미없다’고 말하고 지속적으로 감시한 사실이 인정돼 조씨가 팔짱을 푼 것만으로 정씨가 신체 구속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또 “임의동행 과정과 경위로 볼 때 조씨는 물리력을 행사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정씨는 강제 연행되는 수모를 당하느니 응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 동행에 응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조씨는 항소심에서 불법체포와 불법감금죄에 대해 유죄가 인정됐으나 “93년 당시는 수사기관의 인권의식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징역 4월에 자격정지 1년의 선고가 유예됐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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