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의료 폐업속 빛난 '슈바이처 정신'

  • 입력 2000년 10월 1일 19시 00분


자신보다는 사회를 먼저 생각하고, 부유한 사람보다는 어려운 사람을 위해 일해온 한 의사가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3개월여 동안 계속돼온 의료계 폐업 속에 주야를 가리지 않고 정상 진료를 해오던 와중에 쓰러져 그를 아는 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충북 괴산군 괴산읍 괴산병원 원장 박진석(朴珍石·43·정형외과 전문의)씨. 그는 지난달28일 오후 1시반경 진료를 마치고 식사를 하러 인근 자신의 집에 들렀다 쓰러져 8시간만에 숨졌다.

평소 건강했던 그의 사인은 과로로 인한 뇌출혈. 그는 “우리 병원이 문을 닫으면 동네 어르신들이 어디 가서 진료받느냐”며 병원을 지켰고 지난달 초 이 병원 의사 4명 중 1명이 퇴직하자 주당 3일씩 응급실 야간당직근무를 해왔다.

광주일고 동창으로 이 병원 총무부장인 이강석(李康石·43)씨는 “항상 사회에 나눠줄 것이 없는지 고민하는 인간이었다”는 말로 숨진 박원장을 애도했다.

98년 10월 경영난으로 폐업한 이 병원을 인수한 박원장은 지난해 10월 병원이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자 500여만원을 들여 기관장 등을 초청해 개원 1주년 기념행사를 벌이려 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우리 병원이 이렇게 잘된 것은 군민 때문인데 먹고 마시는 데 돈을 쓰기보다는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게 더 낫다”며 행사비를 불우학생 장학금으로 괴산군에 선뜻 기탁했다.

그는 의대를 나와 병원을 개업해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게 결코 자신이 남보다 머리가 좋고 잘났기 때문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병원이 어려울 때도 명절이면 소년소녀가장 40여명에게 쌀을 나눠주었고 세상을 뜨기 얼마 전에는 괴산북중학교의 결식학생들을 병원 구내식당으로 초청해 식사를 제공하기도 했다.

반면 정작 자신의 씀씀이에는 무척이나 인색했던 그는 아동문학작가인 부인 임광순씨(38)가 병원에 나와 청소아줌마를 돕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박원장은 올해 초 병원 인근에 2000만원짜리 24평 임대아파트로 이사온 뒤 집들이를 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이 정도면 우리 네식구 살기에 너무 충분해. 아니 나에게는 너무 넓고 과분하다고….”

<괴산·광주〓지명훈·정승호기자>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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