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범람/창녕 남지읍]제방 늑장공사 '官災수해'

  • 입력 2000년 9월 16일 18시 53분


태풍 ‘사오마이’가 할퀴고 지나간 직후인 16일 오후 경남 창녕군 남지읍. 낙동강 상류댐의 방류로 넘실대는 흙탕물은 계속 불어나고 있었다.

지붕만 떠있는 낙동강변 비닐하우스는 물론 인근의 상당수 마을이 어디가 가옥이고 어디가 길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이곳의 비닐하우스 재배단지에서는 여기저기 물 퍼내는 양수기 소리가 요란했다. 이곳은 전국 오이 생산량의 25%를 재배하는 대단지.

▽침수피해 실태〓이종식(李鍾植·63), 김순애(金順愛·63)씨 부부는 양수기를 돌리다 “비닐하우스뿐만 아니라 집안에도 물이 들어왔다”면서 “오이가 정상적으로 자라기는 글렀다”고 울상을 지었다.

김씨의 비닐하우스 주변에는 50여대의 양수기가 물을 퍼내고 있었다.

500여평의 비닐하우스에 채소를 심어 세 자녀의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한다는 신용갑(辛容甲·57)씨는 “경지정리를 하면서 배수로를 잘못 만들어 지대는 높지만 해마다 물난리를 겪는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수확을 한달여 앞두고 이 지역의 상당수 채소 농가들은 실농의 위기를 맞고 있다. 흙탕물이 한번 덮치고 나면 아무리 재빨리 물을 빼내도 정상적인 생육이 어렵기 때문.

남지읍내에서 가장 피해가 심한 곳은 낙동강 본류와 200여m밖에 떨어지지 않은 명지리 학계마을.

낙동강 상류댐의 방류로 수백 동에 이르는 대부분의 비닐하우스가 물에 잠긴 상태. 낙동강 수위가 계속 높아지면서 역류를 막기 위해 곳곳에서 중장비를 동원한 힘겨운 작업이 벌어지고 있었다.

남지읍의 비닐하우스 재배면적은 120㏊(36만평)에 1800여 동. 해마다 고추 4000t과 오이 1만t을 생산해 180여억원의 소득을 올려왔다.

그러나 올해는 전체 재배면적의 절반 가까이가 침수 피해를 봐 수십억원대의 손실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수방대책 문제점〓4만여평의 하천변 밭을 빌려 가을감자와 무 배추 농사를 짓는 최치규(崔致奎·40)씨는 대뜸 “대통령님이 이 현장을 한번 봤어야 했다”며 정부에 대한 불만부터 터뜨렸다. 그는 하루 25만여원을 주고 포클레인 1대를 빌려 이틀째 역류하는 낙동강 물을 빼내고 있었다.

3년째 ‘피붙이’ 같은 채소가 침수 피해를 보았다는 그는 낙동강 상류댐 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씨는 “작년에는 큰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미리 댐 수문을 열었고 올해도 평상시 댐 수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한꺼번에 많은 물이 내려오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무 막대기를 비닐하우스 옆에 꽂아 놓고 역류하는 낙동강물의 수위를 재가며 고추모종을 ‘대피’시키던 김대윤(金大潤·65)씨도 “국토관리청에서 하천변 비닐하우스 피해에 대한 보상을 빨리 해주고 이주를 시켰더라면 해마다 엄청난 재산손실을 입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지읍은 낙동강 본류 주변 지역 가운데 유일하게 제 모양을 갖춘 제방이 없는 지역. 부산지방국토관리청과 경남도, 창녕군 등이 사업주체를 놓고 수년 동안 줄다리기를 하는 바람에 제방공사가 늦어지고 있다.

올 초부터 본격 공사에 들어갔으나 전체 5.9㎞ 가운데 1.6㎞가 아직 남아있다. 주민이주와 토지보상 등을 끝내고 공사를 마무리하려면 앞으로 최소한 3년은 더 걸릴 것이라는 게 경남도의 설명이다.

<창녕〓강정훈기자>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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