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교수가 겪는 파업]하루건너 숙직 "못버틸 지경"

  • 입력 2000년 8월 8일 19시 16분


오전 6시.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젖은 솜처럼 무겁다. 지난주 전공의 파업 때부터 계속된 하루건너 숙직근무가 이젠 한계에 다다른 기분이다. 휴가 때 변산반도에 가기로 예악한 콘도도 어제 취소하고 말았다. 여보 미안하구려. 하지만 어쩌겠소. 환자를 버려둘 수는 없는 것을….

대학병원 내과전문의인 K교수(40)는 지난주 초 옷가지를 한아름 병원에 갖다놓았다. 자신이 속한 백혈병클리닉의 전공의 6명이 파업중이기 때문이다.

남은 인원은 그를 포함한 교수 4명과 전임의 2명. 그나마 전임의들도 이번주부터 당직을 거부해 교수들이 밤새 병실을 지켜야 하는 실정이다.

출근하자마자 회진부터 돈다. 병실 환자는 모두 120명. 위중한 환자들이라 업무가 과하다고 소홀히 할 수 없다. 전공의들의 사전 브리핑이 없어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챙겨야만 하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신경도 곤두선다.

수술을 비롯한 각종 지시서도 직접 써야 한다. 말 한마디면 전공의들이 처리해주던 사소한 업무가 이젠 교수 소관이다. 골수검사나 항암제를 투입하기 위해 혈관을 따는 일도 직접 해야만 한다.

외래환자는 하루 40명 정도 본다. 백혈병의 특성상 시간을 끌다가는 생명이 위태롭기 때문에 오는 환자를 돌려보낼 수 없다. 결국 해야 하는 일은 그대로인데 인원만 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응급실에서 콜이 왔다. 응급실을 담당하던 전공의들이 없으니 교수가 직접 뛰어내려가야 한다. 호출받고 달려온 다른 과 교수들도 각자 응급환자를 붙들고 씨름중인 모습들. 밤에도 마찬가지다. 환자 상태에 변화가 있으면 모든 연락이 교수에게 직접 오기 때문에 맘 편히 잠든 지도 꽤 오래됐다.

불행한 사태라는 생각밖에 안든다. 전공의 전임의들이 고뇌하는 이유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의사도 환자도 다 망한다. “어서 돌아와 환자 앞에 서게나.” 간절한 바람이 입안에서만 맴돈다.

<김준석기자> 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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