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수사 긴급회견/배경-파장]"정치권 제압" 강공

  • 입력 2000년 3월 22일 19시 25분


병역 비리 수사에 대한 검찰의 ‘긴급 기자 회견’은 절차와 내용 모두가 이례적이다.

서울지검은 21일 오후 5시쯤 “병역 비리 수사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에 대해 임휘윤(任彙潤)지검장이 오후 6시30분 직접 입장을 밝히겠다”고 기자실에 통보했다. 검찰은 30분 뒤 돌연 기자 회견 방침을 취소했다. 그러다가 22일 오전 다시 기자 회견 계획을 통보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 같은 입장 번복이 병역 비리 수사를 둘러싼 검찰의 ‘고뇌’를 반영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내부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있어 잠깐 보류했던 것일 뿐이다”고 말했다.

검찰이 기자 회견을 통해 밝힌 것은 두 가지. 야당의 주장에 대한 ‘반박’과 병역 비리 ‘수사 강행’이다. 임지검장은 “야권의 정치 공세는 검찰을 정쟁의 당사자로 끌어들이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비판하면서 정치인 자제가 소환에 불응할 경우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초강경 카드를 꺼냈다. 병역비리 수사에 반발하는 정치권을 향해 검찰이 동원할 수 있는 최강의 경고 메시지를 보낸 셈. 검찰이 초강경 입장을 표명하고 나선 배경엔 수사를 무력화하려는 정치권의 기도에 쐐기를 박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깔려 있다.

야당이 총선용 기획 수사라고 반발하며 병역비리수사가 정치 쟁점으로 부상한 가운데 일부 시민단체들까지 야당입장에 동조해 총선 이후로 수사를 연기하라고 주장하자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됐다. 자칫하면 당사자에게 소환 통보까지 한 상태에서 검찰권이 무력화되는 상황이었다. 실제 21일 소환 통보를 받은 2명중 1명만 자진 출석했고 22일 소환 예정이던 6명 전원이 출석을 거부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그러나 문제는 검찰이 밝힌 ‘특단 대책’의 내용. 이승구(李承玖)합수본부장은 이에 대해 “혐의 사실이 어느 정도 인정되면 공개하고 체포 영장은 물론 검증(신체검사)을 위한 압수수색 영장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어느 정도’ 인정되는 혐의 사실을 공개하겠다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이것도 검찰의 다급한 입장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은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총선 일정에 관계없이 병역비리에 대한 신속하고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정치권을 제압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은 정치인 자제에 대해 24일까지 모두 출석하라고 통보하는 등 강한 수사 의지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부분이 도피중인 박노항(朴魯恒)원사의 신병 확보 여부. 검찰은 박원사 검거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박원사가 수도통합병원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며 거물급의 병역 민원을 해결해 온 점으로 미뤄 그가 검거될 경우 정치권에 ‘병풍(兵風)’이 본격적으로 몰아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검찰의 긴급 기자회견은 본격적인 병풍에 대한 ‘사전 예고탄’에 해당하며 수사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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