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제 논의 의원들 말 따로 행동 따로…9개월째 재판 못열어

  • 입력 1999년 7월 11일 23시 24분


정치권에서 특별검사제 도입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정치인들이 현재 진행중인 재정신청 사건 ‘특별검사’의 소환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어 묘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 가택연금 사건에 대한 재정신청 공소유지 변호사인 정성광(鄭聖光)변호사는 11일 이 사건 진상조사를 위해 고소인인 국민회의 김홍일(金弘一) 김옥두(金玉斗) 남궁진(南宮鎭)의원에게 5,6차례 출두요구를 했으나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변호사는 또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에 대해서도 7월6일 출두하라고 요청했으나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가택연금사건’은 김대통령이 민추협 상임고문을 맡고 있을 당시 경찰이 87년 4월10일부터 6월24일까지 김대통령의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을 봉쇄하고 출입을 통제한 사건.

김홍일의원 등은 당시 강철선(姜喆善)변호사 등을 통해 김상대(金相大)마포경찰서장과 권복경(權福慶)서울시경국장 등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88년 2월 무혐의 처분을 내렸으며 강철선변호사 등은 이에 불복, 이들을 기소해달라고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다.

법원은 10년 이상 사건 처리를 미루다 새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지난해 10월29일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김전서장을 재판에 회부했다. 법원은 이어 2월 정성광변호사를 공소유지 변호사로 선임, 재판을 진행하도록 했다.

정변호사는 이에 따라 다시 조사하기 위해 김홍일의원 등에 대해 출두요구를 했으나 거부하고 있다는 것. 김의원은 오히려 ‘나를 이 사건에서 빼달라’는 ‘부탁’까지 했다고 정변호사는 전했다.

또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국장이었던 정형근의원은 안기부의 개입상황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출두를 요청했으나 역시 응하지 않았다.

정변호사는 “관련자들이 조사에 응하지 않아 아직 첫 재판도 열지 못하고 있다”며 “정치권이 이렇게 비협조적이면 정식 특검제를 도입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변호사는 또 “이 사건의 전개과정을 보면 정치인들은 정치상황에 따라 입장과 태도를 바꾸고 검찰은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무혐의 처리했으며 법원도 10년이 지난 뒤에 갑자기 재정신청을 수용하는 등 부끄러운 역사가 아직도 되풀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공소유지 변호사

공소유지 변호사는 공무원 범죄와 선거법위반 사건에서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한 고소인 등이 낸 재정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피의자들을 재판에 회부한 사건에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역할을 하는 ‘제한된 의미의 특별검사’. 주로 공판에만 관여하며 사실조사도 공판진행을 위해 필요한 범위 안에서만 할 수 있어 독자적으로 수사 및 기소를 할 수 있는 본래 의미의 특별검사에 비해 권한이 아주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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