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衣亂서 畵亂으로/무성한 說들]꼬리무는 의혹들

  • 입력 1999년 6월 21일 19시 32분


남북한 서해 교전사태로 잠수했던 ‘고급옷 로비 의혹사건’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직접적인 계기는 21일 최순영(崔淳永)신동아회장이 구속되기 직전인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화백의 고가 그림을 대량으로 구입한 사실이 드러난 것.

그러나 이에 앞서 한나라당 이신범(李信範)의원은 18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형자(李馨子) 리스트’의혹을 제기, 다시 ‘옷사건’을 수면위로 끌어올렸다. 이의원의 의문제기는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부인을 직접 겨냥했다는 점 때문에 정치권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아무튼 ‘옷사건’이 남북한 교전사태의 와중에도 인화성(引火性)이 제거되지 않는 이유는 이 사건과 관련해서 제기됐던 수많은 의혹들 중 어느 하나도 속시원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소문이 꼬리를 무는 등 의혹이 더욱 증폭되는 양상마저 보이는 게 사실이다.

우선 한나라당 이기택(李基澤)고문의 부인 이경의(李慶儀)씨가 제기한 밍크 코트 3벌 의혹. 이씨는 김태정(金泰政)전법무부장관 부인 연정희(延貞姬)씨에게 전달된 밍크 코트가 3벌이라고 주장했다. 이씨의 주장이 ‘3벌 가운데 2벌이 각각 고위층 가족에게 전달됐다’는 풍설로 이어지면서 ‘몸통설’을 낳았다. 그리고 ‘몸통설’이 이신범의원이 제기한 ‘이형자 리스트’ 의혹과 맞물리고 있는 것이다.

시중에 나도는 ‘이형자 리스트’에는 현 정권 실세와 실세 부인들이 거명돼 있다. 이들에게 엄청난 고가의 미술품과 골동품, 사파이어세트와 고급옷 등이 건네졌다는 등 이 리스트는 악성소문의 진앙(震央)이 되고 있다.

이외에도 최회장이 구속되기 전 당시 김태정검찰총장과 통화했다는 설, 이형자씨의 돈심부름을 했던 한 비서출신이 여권 고위인사들 부인에게 돈전달한 내용을 한 언론사에 제보했다는 설, 라스포사 정일순(鄭日順)사장이 김태정총장에게 보낸 사신(私信)을 모 신문이 입수해 보관하고 있다는 설 등이 한나라당에서 규명하겠다는 의혹들이다.

특히 정사장의 편지 건과 관련, 정치권 안팎에선 이미 “편지의 내용에 여권 고위층 부인들과 정사장의 관계가 상세히 적혀있다”는 얘기가 나돌아 한나라당측이 내부적으로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편지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진 언론사측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이기 때문에 당사자의 동의없이는 공개할 수 없는데 현재 정일순사장 쪽으로부터 동의를 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이 언론사측은 “별다른 내용이 없고 신빙성도 문제가 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은 지난해 9월경부터 ‘최순영회장이 외화 해외도피에도 불구하고 사법처리를 당하지 않은 것은 여권 각료 한사람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제보가 접수돼 자체 조사를 벌였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옷사건’은 한마디로 끝을 알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다”고 말한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권 일각에서도 갖가지 소문이 나돌았다. 특히 지난해 12월 여권 핵심인사 자택에서 가진 고관집 부인 모임은 아직까지 뒷말이 무성하다.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한 여권 인사 부인은 “그 자리에 몇몇 장관과 H그룹 S그룹 회장 부인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침 식당에 ‘앙드레 김’의상실에서 보내온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어 옷 얘기를 나누게 됐고 식사 후 일부 참석자들이 앙드레김 의상실에까지 갔다는 것.

여권 관계자는 “당시 이형자씨도 그 모임의 멤버가 되려고 노력했으나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권 핵심인사측은 “그 모임은 수요봉사회 모임이 끝난 뒤 자연스럽게 가진 식사 모임이었을 뿐”이라며 ‘옷사건’과 무관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모임 역시 좀더 규명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한나라당측은 주장한다.

〈김창혁·박제균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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