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병용 졸속추진」논란 가열…문화부는 추진밝혀

  • 입력 1999년 2월 10일 18시 59분


정부가 공문서와 도로표지판에 한글과 한자를 병기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한자병용 방안’을 9일 전격 발표한 데 대해 졸속 추진을 우려하는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한글전용을 주창해온 한글학회(회장 허웅)를 비롯한 4개 한글 단체는 10일 “한글 한자 병용 방침은 시대에 역행하는 처사”라는 반대성명을 발표하는 한편 서울 종로구 정부 세종로 청사 후문앞에서 정부의 추진 방침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이날 채택한 선언문에서 “정부가 겉으로는 세계화 정보화시대를 내세우면서도 안으로는 48년 제정된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을 폐지하기 위한 음모를 펴고 있다”며 “국어심의회의 결정 등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한자병용 방침을 기습처리하려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또 관련 정부 부처에서도 ‘한자병용 방안’은 단순히 공문서와 도로표지판에 한자가 나란히 표기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한글을 전용해온 국가 어문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일 뿐만 아니라 관공서의 한글전용 사용 관행에도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공청회 개최, 관계부처와의 협의 등을 거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행정자치부는 “한자를 병용할 경우 한글전용을 전제로 진행중인 문서정보화 프로그램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으며 건설교통부는 한자를 병기할 경우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반면 현실적인 효과는 검증되지 않은 상태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교육부는 이번에 발표된 정부 방침이 현재의 어문교육 수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으나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그동안 여러차례 오락가락한 어문교육방향이 다시 한번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한편 문화관광부 박문석(朴文錫)문화정책국장은 “이미 대통령 지시가 내려진 만큼 논란이 있어도 한자병용 방침은 당초 계획대로 추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부는 설연휴가 끝난 다음 이르면 내주 말에 공문서는 한글만 쓰도록 한 ‘사무관리규정’(대통령령)에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붙이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대통령령 개정에 관한 의견을 행정자치부에 보낼 방침이다.

〈조헌주기자〉hansc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