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보다 실속』…대학생 직업관 바뀐다

  • 입력 1999년 2월 2일 19시 57분


지난해 12월초 경기 용인 동원산업 연수원에서 생긴 에피소드 한 가지.

인턴으로 선발된 신입사원 90명을 앉혀놓고 한 임원이 회사 소개를 하는 자리였다. 회사개요를 설명하던 그는 대뜸 “삼성이 인턴사원 선발 계획을 발표했다”며 “여기 있는 여러분은 모두 우수한 인재들이니까 지원하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던졌다. 그런 본부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입사원들은 “동원 파이팅”이라는 함성을 외쳤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화답이었다.

신입사원 송광희(宋廣喜·27)씨는 “그날 이후로도 입사 동기들 가운데 삼성에 지원할까를 놓고 고민하는 친구는 보지 못했습니다. 다들 맡은 일들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라고 말한다.

극심한 취업난이 대학생들의 직업관을 바꿔놓고 있다. ‘무조건 대기업’에서 ‘장래성 있는 일터’로 가치관이 급속히 변하고 있는 것.

대기업의 공개채용이 실종되고 인턴사원제가 그 공백을 메우는 취업현장의 구조적 변동이 여기에 큰 몫을 했다. 중견기업은 대부분 인턴기간이 끝난 뒤 정규직 발령을 약속해주지만 대기업들은 이를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

이같은 변화는 작년말과 올초 인턴사원을 선발한 기업들의 경쟁률에서도 읽을 수 있다. 동원산업의 경우 1만2천여명이 지원, 1백20대 1이 넘는 사상 최대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덕분에 동원은 과거에는 뽑고 싶어도 지원이 없었던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소위 명문대 출신을 10여명 확보하는데 성공.

동원산업 한 관계자는 “당초 70명 선발 예정이었지만 워낙 인재가 많아 인원수를 늘렸다”고 말했다.

빙그레도 인턴사원 14명 모집에 6천여명이 몰려 입사업무 처리에 애를 먹었다. 작년말 인턴사원 50명을 모집한 오뚜기는 50대1의 경쟁률 속에서 ‘알짜배기’를 뽑는데 성공한 여세를 몰아 6월로 예정돼있던 상반기 채용을 2월초로 앞당겼다.

대기업의 경우 인턴사원 1천명씩을 선발한 삼성과 대우는 각각 40대1, 32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그러나 대우는 지난달말부터 시작한 연수에 2백명 가량이 불참하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평생직장’이 무너진 뒤 ‘평생직업’이 가능한 곳으로 학생들이 발걸음을 옮겨가고 있는 추세에 대해 전문가들은 “극심한 취업난의 여파로 생긴 바람직한 변화”라고 해석한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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