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가위는 「寒가위」…유통-제조업체 「대목」 실종

  • 입력 1998년 9월 24일 19시 03분


“12년째 장사를 하지만 이런 불경기는 처음이에요. 추석은커녕 예년 평일보다 매출이 절반 이상 떨어졌습니다. 차라리 추석이 없는 게 낫겠어요.”(남대문 아동복도매점 정영순씨)

아무리 불경기라 해도 명절을 앞두고는 지방상인들로 북적거리던 남대문시장.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을 열흘 앞두고 ‘명절대목’이란 말은 까마득한 옛말이 돼버렸다. IMF체제 이후 이곳을 찾는 지방상인이 30∼40%나 줄어들었고 시장 전체가 썰렁한 분위기다.

백화점 등 유통업체들도 매출목표를 작년보다 20%이상 줄여잡고 판매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마저 채우기 어려운 실정.

기업들의 추석선물이 거의 사라지면서 선물세트로 추석특수를 누려왔던 식품 및 생활용품 업체들도 울상을 짓고 있다.

▼추석경기 완전 실종〓추석경기의 선행지표라 할 수 있는 기업용 추석선물시장과 상품권 판매가 작년의 절반수준에 불과해 유통업체마다 비상이 걸렸다.

롯데백화점은 작년 추석 열흘을 앞둔 시점에서 단체선물로만 70억원어치를 팔았지만 올해는 30억원을 겨우 넘어선 정도. 상품권 판매도 지난해 3백60억원에서 올해 2백60억원으로 30% 가까이 줄었다. 신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도 마찬가지 상황.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 등 재래시장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예년 같으면 상가별로 홍보비를 거둬 ‘추석맞이 사은행사’ 등을 벌였으나 올해는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태.

남대문시장의 경우 작년 추석전에는 지방상인들을 태운 전세버스가 하루 평균 80여대에 이르렀으나 올해는 40여대에도 못미치고 있다.

▼기업에도 찬바람〓일반 기업체에서도 한가위 분위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직원용 선물이 아예 사라지거나 줄었다. 삼성 현대 대우 등 대기업 계열사 대부분이 직원용 추석선물을 없앴다.

기업이나 금융권에서 구조조정 작업이 한창인 데다 도산으로 사원봉급조차 제대로 주지 못하는 기업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추석선물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한가한 소리’라는 분위기.

제일제당 대상 등 추석용 선물세트를 제작하는 식품회사는 올해 출고량을 작년보다 10% 이상 줄이고 단가도 50% 가량 낮췄지만 주문이 대폭 줄어 고스란히 재고로 남게 될 판이다. 대상은 작년과 비슷한 45만세트를 제작, 가격대를 작년 2만∼3만원에서 올해는 1만원대로 낮추었으나 단체주문이 워낙 줄어 매출이 작년의 60%선에 그칠 전망.

또 의류업체들도 재고물량이 쌓이는 바람에 원가 이하의 가격으로 무조건 재고를 처분하는 형편이다.

▼추석물가는 그래도 안정〓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되다보니 일부 채소류를 제외하고는 추석마다 값이 크게 올랐던 농산물과 과일류 육류의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락동시장에 따르면 배추(5t트럭)의 경우 월초에 7백60만원까지 올랐으나 이번주 들어서는 평균 4백만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시금치(4㎏)는 19일 최고 1만7천원에 달했으나 23일부터 1만3천∼1만4천원에 거래되고 있다.

쇠고기(1㎏)도 이달들어 5천원대를 유지하고 있어 지난해 추석때의 6천5백원보다 낮게 거래되고 있다. 돼지고기(1㎏)는 이달들어 2천5백원선을 유지해 변동이 없으며 닭고기(1㎏)는 값이 더 떨어져 2천4백원에 판매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올 추석 제수용품 가격은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며 농산물의 경우 지난해보다 오히려 떨어진 품목이 있을 정도다.

〈김승환·정재균기자〉shean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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