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항쟁 11돌/당시 외국인이 본 시각]

  • 입력 1998년 6월 9일 19시 44분


“10여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역사적인 현장에서 한국민의 저력을 느낀 날들이었습니다.”

87년 6월항쟁 당시 일본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이었던 다나카 요시카즈(田中良和·50) 아사히신문 종합연구센터 주임연구원은 “최근 수하르토의 퇴진을 몰고 온 인도네시아 민중혁명을 보면서 11년전 한국의 6월을 다시 머리에 떠올리곤 했다”고 말했다.

85년10월부터 89년1월까지 서울지국장을 지낸 그는 재임 전기간이 한국의 격동기였으며 특히 87년 1월부터 6월까지가 가장 긴박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최루탄이 난무하는 시위현장으로 취재를 나갔다가 사무실로 돌아와 한국민중의 함성을 송고하는데 피곤한줄 몰랐다고 말했다.

“나는 6월항쟁 초기만 해도 한국정부가 국민적 저항을 충분히 진압할 수 있는 일과적 사건이라고 잘못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게 아니구나. 지금 한국에 큰 역사적 물결이 몰려오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시각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은 것은 명동성당 주변과 부산시위에 학생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대거 가세,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치는 것을 보면서였다고 한다. “쉽게 수습될 사태가 아니며 5공정부가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라는 판단이 들었다는 것.6월항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권위주의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한 아시아 각국이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세계사적 의미를 가진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러나 권위주의 체제붕괴가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교훈도 남겼다고 지적했다.

“민주화운동의 지도자였던 김영삼(金泳三)씨가 집권후 경제정책에 실패한 것은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민주정부가 통치능력의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줬으며 김대중(金大中)정부역시 이런 위험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다나카 요시카즈(당시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

〈도쿄〓권순활특파원〉kwon889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