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달러]『유학간 아들 돈부쳐달라 난린데…』

  • 입력 1997년 10월 30일 19시 47분


『미국에 유학간 아들 생활비를 열흘째 못부쳐 주고 있어요. 애는 날마다 「왜 돈을 안보내느냐」고 성화인데 언제까지 달러값이 내리기만 기다릴 수도 없고…』

미국 동부의 사립고교에 아들을 보낸 박모씨(44·여·서울 삼청동)의 「고(高)환율 시름」이다.

연일 치솟는 원화환율이 가뜩이나 어려운 불황 속 살림에 더욱 깊은 주름살을 만들고 있다. 특히 유학생 자녀를 둔 가정의 부모들은 비상이 걸렸다.

미국 보스턴의 대학에 두 명의 자녀를 유학보낸 김모씨(63·여·서울 서교동)는 『달러값이 10원만 올라도 돈 부쳐주는 날짜를 미뤘는데 달러값이 이렇게 뛰어서야 공부를 계속 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유학을 준비중인 학생들도 마음이 무겁다. 토익 토플 등 미국에서 주관하는 어학능력시험의 수험료가 환율 상승 탓에 최근 11% 가량 올랐다. 한달 전만해도 5만4천원이던 토플수험료가 6만원으로, 대학원입학학력고사(GRE)와 경영대학원 입학 학력고사(GMAT)도 각각 1만2천원과 1만6천원이 올랐다.

이모씨(26·연세대 경제학과 4년)는 『유학을 가려고 GRE 시험을 계속 보고 있는데 수험료가 너무 올라 이번달에는 시험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환차손 노하우」가 없는 영세 수출입업자들도 불안한 심정들이다.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아예 원화로 바꾸지 않고 있다.

동남아에서 무역업을 하다 29일 입국한 이모씨(43·서울송파구 송파동)는 당국에 신고한 뒤 수출대금 39만달러를 원화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다. 1주일 뒤 출국할 때 달러로 갖고 나갈 생각이다.

『도난 우려도 있긴 하지만 원화로 바꿨다가 2천만원 정도 손해보는 것보다는 백배 더 낫죠』

김포공항내 은행 환전창구에서 원화를 달러로 바꾸려는 출국자들은 환율고시판 앞에서 한숨부터 내쉰다.

미국 중서부 지방으로 일주일간 배낭여행을 가는 김명호(金明鎬·26)씨는 『올초에 여행계획을 짤 때만 해도 경비를 3천5백달러로 잡고 3백만원을 모았는데 50만원이 더 들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암달러상들이 많은 남대문시장 골목은 「경기」가 확 죽었다.

암달러상 최모씨(63·여)는 『달러가 갑자기 큰 폭으로 오르자 달러를 팔겠다고 오는 사람이 없어 달러 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달중 달러를 팔겠다는 손님은 지난달에 비해 절반 이하』라며 울상을 지었다.

이곳에서 5백달러를 구입했다는 강모씨(35·자영업·서울 장안동)는 『은행에 비해 달러당 40원 가량 싸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강씨처럼 조금이라도 싸게 달러를 구하려고 나온 사람들은 많지만 「매물」이 워낙 적어 상당수는 허탕만 치고 돌아가고 있다.

〈이명재·정위용·박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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