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대사 망명/결행배경]北 政情불안 엘리트이탈 촉발

  • 입력 1997년 8월 25일 20시 17분


이집트의 카이로주재 장승길북한대사가 망명을 결행한 동기는 무엇일까. 장대사가 북한의 비동맹외교의 거점으로 공을 들이고 있는 이집트주재대사로 발령받았을 만큼 金正日(김정일)의 총애를 받아온 북한권부의 핵심엘리트라는 점에서 그의 망명배경은 더욱 관심을 모은다. 그러나 장대사의 정확한 망명배경은 상황이 유동적인 상태에서 아직 베일에 가려진 상태다. 다만 장대사주변의 최근 행적을 살펴보면 장대사 망명이 우발적으로 이뤄진 충동적 사건이 아닌 점은 분명한 듯하다. 우선 장대사는 지난해 8월 차남 철민씨(19)가 돌연 잠적한 사건으로 인해 신변에 위협을 느껴온 것으로 보인다. 내달초 3년 임기를 마치고 북한에 돌아갈 시점에서 자식관리 소홀에 따른 책임추궁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장대사의 형 장승호 프랑스주재 북한대표부 참사관의 문제도 장대사의 고민거리였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장참사관은 외화상납을 맡아온 「외화벌이꾼」으로 최근 축재(蓄財)사실이 북한당국에 발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 형제의 동반망명이 신변위협을 느낀 개인적 차원의 불안에 의해서만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들의 잠적과 축재문제가 발생한 후 북한당국의 징계가 내려지지도 않았고 특히 장대사는 지난 2월 평양에 들어가 열흘쯤 머무른 뒤 다시 카이로에 귀임, 북한당국의 여전한 신임을 과시했다. 이와 관련, 북한 엘리트층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체제일탈현상이 주요한 망명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94년 金日成(김일성) 사후 김정일의 공식승계가 늦춰지면서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는 북한의 정정(政情)에 따른 위기의식으로 체제상층부의 이완현상이 심각하다는 것. 장대사가 북한실상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외교관이라는 점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 잠비아주재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으로 근무하다 망명한 玄成日(현성일)씨는 『외교관들과 북한 지식인들 사이에는 북한의 미래에 대해 회의와 우려가 많으며 이 때문에 갈등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지난 4월 서울에 도착한 북한노동당 국제담당비서 黃長燁(황장엽)씨의 귀순이 북한엘리트층에 던진 충격도 장대사망명을 부추겼을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정연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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