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영 피격/남북관계]멀어진 대화 『정면충돌 위기』

  • 입력 1997년 2월 16일 19시 53분


[김기만 기자] 李韓永(이한영)씨 피격사건이 북한지시에 따른 소행이라면 이 사건은 남북관계를 극도로 긴장시키면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이 확실하다. 黃長燁(황장엽)북한 노동당비서의 망명 다음날인 지난 13일 북한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로 적들에 의해 납치된 것』이라며 『응당한 대응조치를 할 것』(평양방송)이라고 반응했다. 이 방송이 있은지 불과 이틀만에 서울 근교에서 이씨가 저격된 것이다. 작년 9월 동해안 잠수함침투 사건이 발생했을 때 「백배 천배 보복」선언이 있은 뒤 나흘만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崔德根(최덕근)영사가 괴한에 의해 살해됐다. 이 사건의 수사결과 발표를 러시아는 미루고 있지만 정부당국은 북한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이씨 피격에서 읽어지는 북한의 복수의지와 경고메시지는 최영사 피습 때보다 훨씬 뚜렷하다. 현재로서는 이씨 피격이 황비서 망명요청에 대한 연쇄보복의 신호탄인지, 경고성 단발사건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그러잖아도 경색됐던 남북관계가 더욱 얼어붙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우선 정부는 오는 22일로 예정됐던 북한신포 경수로발전소 7차 부지조사단의 파견을 어떻게 할 것인지 재검토하기로 했다. 또한 남북교역의 계속진행과 유엔식량계획(WFP)에 참여해 북한을 지원하려던 계획도 일단 유보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대북경계감이 고조되는 시점에 정부가 대북현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 발 후퇴해 속도를 늦추거나 잘 해야 현상태를 유지, 관망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마지못해 잠수함 사건을 사과했고 이를 빌미로 미국으로부터 50만t의 식량거래를 어렵게 허가받았으나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아 체면만 상한 채 실리(實利)도 잃었다. 일단 4자회담 설명회를 거부하고 미국 및 일본과의 물밑교섭에 힘을 쏟던 판에 황비서 망명사건이 터져 체면은 더욱 구겨졌고 지도자 金正日(김정일)의 55회 생일잔치도 망쳐버렸다. 어차피 숙청 등을 통한 내부정비와 권력재편에 시간이 필요한 만큼 남북경협에 속도를 내지는 않을 것이 뻔하다. 다만 경수로사업은 형식상 남한이 아니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라는 국제기구가 하는 사업이고 북한으로서도 한시가 급한 만큼 지연을 원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 변수는 미국 중국 일본 등 한반도 이익관련국의 역할이다. 한반도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으면 중재자나 해결사는 으레 미국이었고 최근에는 중국도 한 몫을 맡았다. 이들은 남북한 양측에 대해 「쿨 다운」(냉정하라)과 양보 및 직접대화 참여를 주문할 공산이 크다. 이들의 주문과 해법은 일부나마 기능, 남북관계의 교착상태를 깨는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기여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지난 94년 7월8일 金日成(김일성)사망 이후 조문문제로 난조에 빠진 남북관계는 잠수함 사건이라는 큰 위기를 돌파한 후 또다시 정면충돌의 위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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