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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처럼 정답고 그리운 말이 있을까?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엄마 찾아 삼만 리’(1976년)에서 마르코는 아르헨티나로 일하러 간 엄마를 찾아 홀로 먼 길을 떠난다. 송나라 주수창(朱壽昌)도 어릴 때 헤어진 어머니를 찾아 전국을 떠돌았다. 마르코처럼 주수창도 마침내 어머니와…

죽음을 떠올리는 순간 비로소 삶이 윤곽을 드러낸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에서 주인공 정원(한석규)은 텅 빈 운동장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자신 역시 언젠가 사라져버릴 것을 예감하곤 했다. 조선 후기 문인 이양연(李亮淵·1771∼1853) 역시 자…

삼 가르바르스키 감독의 영화 ‘나의 첫 번째 장례식’(2013년)에서 주인공 윌은 생일날 자신에 대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무심함에 실망한다.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자신이 죽은 것으로 오인되자, 윌은 인도인 비제이로 위장해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도연명(陶淵明·365?∼427)도 …

아그니에슈카 홀란트 감독의 영화 ‘토탈 이클립스’(1995년)는 시인 랭보와 베를렌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는 베를렌이 독주 압생트를 마시는 처음과 끝 장면 사이에 그들의 과거 추억을 배치한다. 베를렌은 랭보가 죽었다는 소식에 함께 즐기던 압생트를 홀로 마시며 랭보를 생각한다. 영화처…

알베르 세라 감독의 영화 ‘기사에게 경배를’(2006년)은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험이 아니라 우정에 집중한다. 괴짜 기사는 종자 산초에게 연신 잔소리를 하고 핀잔을 주지만, 산초는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유일한 벗이다. 나이와 신분을 넘어선 특별한 우정을 청나라 원매(袁枚·1716∼17…

존 캐서베티즈 감독의 영화 ‘남편들’(1970년)에서 세 친구 해리, 거스, 아치는 절친했던 스튜어트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며 깊은 상실감에 빠져든다. 해리는 이제 셋만 남아 쓸쓸하게 보인다고 하고 거스는 죽은 이를 그만 보내자고 되뇐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엔 여전히 스튜어트가 남…

한시에는 남자들의 우정을 읊은 시가 많다. 반면 이성 간의 연애 감정을 읊은 시는 드물다. 삼국시대 위나라 유정(劉楨·?∼217)이 쓴 다음 시는 마치 이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시의 화자는 가을날 규방에서 잠 못 이루며 님에 대한 속마음을 적어 본다. 전장으로 떠난 …

리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2012년)에서 소년 파이는 선박회사 사고 원인 조사원들에게 배가 난파된 뒤 망망대해에서 홀로 살아남게 된 과정을 이야기한다. 인조반정 뒤 광해군 복위를 도모했다는 무고로 잡혀온 유몽인(柳夢寅·1559∼1623)은 국문을 담당한 정승에게 자신의 …

영화 ‘빠삐용’(1973년)에서 죄수들은 나비를 잡는다. 나비의 날개는 갇힌 그들의 처지와 대비되고 자유를 갈망하는 주인공은 자신을 나비에 빗댄다. 당나라 낙빈왕(駱賓王·638?∼685?)은 죄수가 된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매미에 빗대 노래한 바 있다.678년 낙빈왕은 상소문이 측천무…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년)의 절정은 열다섯 살 소년 샤오쓰가 소녀 샤오밍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자신은 이 세상처럼 변하지 않는다며 샤오밍은 구애를 거절한다. 샤오쓰는 격분해 샤오밍을 찌르곤 절규한다. 조찬한(趙纘韓·1572∼1631)의 시도 16세기말 한 불량…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년)에는 젊은 날의 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물이 나온다. 주인공 누들스는 대공황 시기 뉴욕의 뒷골목에서 친구들과 나쁜 짓을 일삼는다. 노인이 된 누들스는 죽은 줄 알았던 친구 맥스와 다시 만나 과거를 추억한다. 당나라…

‘화도시(和陶詩)’는 도연명의 시에 화운(和韻)한 작품을 말하는데, 운자(韻字)를 따라 쓰는 방식으로 도연명 시에 대한 존중과 공감을 표현한다. 영화에서의 오마주와 비슷하다. 조선시대 김종직(金宗直·1431∼1492)은 다음과 같은 ‘화도시’를 남겼다. 도연명의 ‘술주(述酒·술을 이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주인공은 ‘세계의 끝’에서 자신의 몸뚱이로부터 잘려진 그림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분리된 자아와의 대화라는 상상력은 일찍이 도연명(陶淵明·365?∼427)의 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모두 3수로 이루어진 시의 일부다. 도연명 …

실화를 바탕으로 한 짐 셰리던 감독의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1993년)에서 주인공 제리 콘론은 아일랜드공화국군(IRA) 소속 폭탄 테러범이란 누명을 쓰고 아버지마저 공범으로 체포된다. 영국의 압제와 북아일랜드 독립 투쟁의 틈바구니에서 제리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아버지는 감옥에서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2008년)엔 자식들이 찾아와도 살가운 말 한마디 없는 권위적인 아버지가 나온다. 가족은 함께 왁자지껄 즐겁지만 아버지의 모습엔 어딘가 쓸쓸함이 배어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가족이 모인 이유가 드러난다. 그날은 죽은 큰아들의 기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