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방에 있을 때, 휴대전화의 연락처를 하나씩 세어보는 습관이 있다. 다들 어떻게 사는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로필을 보며 마음으로 안부를 묻는다. 그러다 가끔 멈칫한다. 죽은 사람들이 친구 목록에 남아 있을 때. 처음 친구의 장례식에 간 건 29세 때였다. 마지막 병문안을 …
혼자 살던 사회 초년 시절, 어쩌다 마음이 축난 날에는 퇴근 후 요리를 했다. 평소 즐기는 것도 딱히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기다리는 사람도 없겠다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또각또각 칼질을 하고 무엇이든 만들어 상을 차려 놓고 나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오후 11시가 다 되어 먹는…
내가 유독 난감해하는 질문이 있다. ‘아이들을 좋아하느냐’는 질문. 솔직히 말하자면 나와 무관한 유아나 아동에게서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하자면 그것도 썩 개운치 않다. 질문자는 십중팔구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일 터. 아이들의 부주의함과 시끄러움과 축…
버스 운전사에 대한 영상 콘텐츠를 의뢰받았다. 오랜만의 촬영이라 설레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조금 불편했다. ‘실은 최근에 버스 기사님에 대한 민원을 넣으려던 적이 있어요. 불친절을 이유로….’ 휴대전화엔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떠나가는 버스를 보며 찰칵찰칵 번호판을 찍었다. 결국 민원…
“진짜지? 진짜 낸다?” “콜!” 삶이 무료하던 어느 날, 친구와 나는 충동적으로 다음 날 오후 반차를 신청했다. 고등학교 때 만나 어느덧 아이 엄마가 된 그와의 만남은 언제나 퇴근 후 두 시간 남짓이 전부였다. 그렇게 지난 몇 년간 우리가 쌓은 추억이라고는 강남역 언저리의 외식 …
나는 여행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 묘미란 일장춘몽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 다만 몽상이 때로는 행복에 닿기까지 하니, 백미는 역시 상대와 내가 동일한 경험을 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다. “거길 갔어요? 거긴 보통 잘 모르는데.” “아 그거 맛있죠!” 소재가 일본일 때는 훨…
우리는 살면서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몸치였던 내가 서른 살 겨울, 댄스 학원에 등록한 것도 우연한 사건들에서 비롯됐다. 첫 번째는 문학의 밤 행사였다. 올해의 시인을 뽑는 자리였다. 주인공은 1992년생 시인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피자를 좋아하고, 춤을 추는 사람’…
매캐한 서울 하늘을 보면 숨이 턱 하고 막혀 왔다. 태초의 맑은 공기를 맡고 싶었고, 권태로운 일상에 경계를 짓고 싶었다. 그리하여 떠난 곳, 네팔 히말라야. 결과적으론 14년 만의 폭설로 목표 지점을 앞두고 아쉽게 하산해야 했지만 익숙해져온 도전과 성취 대신 순응과 겸허함을 얻어왔다…
한동안 부엌 찬장에 라면 분말 수프를 쟁여 두곤 했다. 회사 근처 부대찌개집에서 라면사리를 주문하면 인스턴트 라면을 봉지째 제공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런 점포를 위해 개발된 상품인 ‘사리면’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몰라도, 하여간 자취인에게는 감사한 일이었다. 주머니에 넣기 전에 동석…
취준생인 그(여성)는 오늘도 묻는다. “언니, 난 뭘 잘하는 것 같아?” “음, 사랑?” 그렇다. 그는 타고난 사랑꾼이다. 지금껏 그가 만난 여자만 해도 한 명, 두 명…. 아, 여기서 ‘여자’는 오타가 아니다. 2019년에는 여자가 여자랑 연애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을 레즈비언이라…
어릴 적부터 우리 집은 부모님 결혼기념일을 중요한 가족행사로 챙겨왔다. 두 분이 만나 결혼하셨기에 우리가 태어날 수 있었으니 생신만큼 중요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데이트하시라며 두 분을 밖으로 내몰고서는 한 명은 창문에 붙어 망을 보고, 두 명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풍선을 벽에 붙이…
‘박막례 할머니’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올해 72세 박 할머니의 온갖 도전기를 동영상으로 다루는 계정으로 구독자가 64만 명이 넘고 국내외 유력 매체에도 소개됐다. 최근 박 할머니의 채널에는 ‘맥도날드 이용 도전기’ 영상이 업로드됐다. ‘막례앓이’로 불릴 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계…
새로 사귄 한 친구는 그림으로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심리 상담가의 딸로 태어나 자연스레 터득한 기술이라 했다. 내게도 해주겠다기에 집으로 초대했다. 일대일로 했다간 나를 다 들킬까 겁나 동네 친구들을 불렀다. “그림은 무의식을 반영하는 좋은 수단입니다.…
어릴 적 괴짜 같은 버릇이 하나 있었다. 오늘 하루가 목표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조용히 눈을 감고 벽에 기대 열을 세고는 다시 눈을 떠 마치 아침에 막 일어난 양 새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었다. 소위 ‘오늘은 망했다’는 판단이 서면 좀처럼 잘해 볼 마음이 들지 않아 스스로 …
내게 특별한 능력이 생겼음을 깨달은 건 3년 전 연말이었다. 상하이의 한 클럽에서 새해를 기다리던 2016년의 마지막 밤. 문득 둘러보다 알게 된 건, 놀랍게도, 내가 이국의 연말 군중에서 한눈에 한국인을 골라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그날 그 클럽을 벗어난 후에도 능력은 지속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