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에서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2번으로 당선한 박충권 당선인(38)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22대 국회에서 유일한 탈북민 출신 의원이자 청년과학기술인 출신이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의 삶의 궤적은 남다르다. 그는 북한 국방종합대(현 김정은국방종합대 화학재료공학부)에서 공부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핵·미사일 관련 연구에 참여하다 체제에 회의를 느껴 탈북을 결심했다. 고교 졸업 후 바로 대학에 진학한 ‘직통생’에 부문비서·사상비서를 맡는 등 대학에서도 인정받은 엘리트였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북한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인간을 ‘가붕개’만도 못하게 봐
박 당선인은 1년 8개월 동안 준비한 끝에 2009년 4월 9일 맨몸으로 두만강을 건너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3일 아침
8시 무렵 인천항에 도착했는데, 당시를 두고 “흑백TV를 사용하다가 바로 터치패드를 쓰는 느낌이 들 정도로 양국 격차가 크게 다가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서울대 재료공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대제철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했고,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 영입인재로 정계에 입문했다. 4월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박 당선인은 “한국 청년들이 나를 보면서 미래와 가능성을 떠올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방종합대와 대량살상무기연구소에서 연구하다 탈북을 결심했는데.
“대학생 시절 극한 환경에서도 작용하는 윤활액과 부동액 등을 연구했다. 정찰위성과 같이 우주에서 기계 부품들이 작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야다. 군수공장이 밀집해 있는 자강도 등 추운 북한 지방에서 무기들이 작동하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대학 동기들은 미사일 고체연료를 생산하는 연구소, 탄두부 재진입체를 개발하는 연구소 등에 있었다. 대학 졸업 후 군수공장연구소에 배치됐는데 그때는 이미 생각이 바뀐 뒤라서 출근하지 않았다.”
출근을 안 하는 것이 가능한가.
“거의 매달 데리러 왔다. 회유도 하고 협박도 했는데, ‘곧 가겠다’고 말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아마 더 지체했다면 잡혀 갔을 수도 있다.”
탈북을 결심한 계기가 있나.
“대학을 졸업할 무렵 북한 체제의 본질을 깨달았다. 인간을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만도 못한 존재로 보고 억압한다는 점이다. 북한에서는 사상교육을 위해 ‘노작’이라는 수업을 한다. 김일성, 김정일이 썼다는 논문을 가르치는 수업이다. 당시 ‘사회주의는 과학이다’ ‘사회주의에 대한 훼방은 허용될 수 없다’라는 제목의 두 논문을 공부했다. 사회주의에 대한 외부 비판에 재반박하는 내용이다. 논문을 읽어보니 외부 비판이 옳은 것 같더라. 사람들이 유일사상 아래 있다고 하는데, 대학생 시절 만난 친구들은 저마다 생각이 달랐다. 계획경제가 옳다는데, 당장 내일 아침 내가 뭘 먹고 싶은지 국가가 알 수 없지 않나. 역설적이게도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논문을 통해 자본주의 기초를 배웠다.”
대학생 시절 북한에 실망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뇌물이면 안 되는 게 없었다. 대학 등 북한 내 아래 단위만 부패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졸업 무렵에 보니 북한 최고지도기관이라고 하는 조선노동당까지 부패해 있더라. 이곳에까지 매관매직이 있는 것이다. 평양이나 선호 지역의 공장·연구소에서 일하려면 돈을 얼마 내야 하는지가 정해져 있었다. 위아래로 모두 부패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꿈과 희망이 사라졌다. 내부에서 혼자 바꿀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 탈북을 결심했다.”
현대제철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다. 북한에서 연구할 때와 어떤 점이 달랐나.
“한국에 오니 대학원생이 무척 많았다. 북한은 박사가 귀하다. 흰머리가 있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박사인데 한국은 빠르면 20대 후반, 30대 초반 박사도 있더라. 현대제철에서 일하면서도 인재가 많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힘들다고 느낀 것은 없었다. 다만 한국 기업들이 좀 더 일하기 편한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제조업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인 나라 아닌가.”
잘할 수 있을까. 잘해야 한다
정치라는 낯선 영역에 발을 들였다.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그간 학업과 회사 일에 집중해왔는데, 삶의 궤적 때문인지 마음 한편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다. 한국을 두고 ‘규제공화국’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된 문제 해결을 돕고 싶다. 정치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잘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했다. 잘할 수 있을까. 잘해야 한다.”
국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싶나.
“정치인에게는 각자 주어진 소명이 있다고 한다. 고민이 많다. 나는 탈북자이면서 공학도이며 청년이다. 이와 같은 정체성, 캐릭터가 어떻게 보면 다 미래와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의 과제인 남북통합은 물론, 과학기술 인재를 육성하고 청년들이 희망을 펼칠 수 있는, 새치기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한국에 온 지 15년이 넘었다. 가진 것 하나 없고, 별 볼일 없는 청년이었는데 많은 분의 도움과 사랑으로 서울대 박사 과정을 거쳐 좋은 기업에서 일할 수 있었다. 이제 국회의원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됐다. 어찌 보면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노력과 사회의 공정한 시스템, 공동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움이 어우러져 청년들이 꿈과 희망을 펼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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