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소재파악 늑장… 그사이 강화도 배수구 통해 월북 추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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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월북 파장]
경찰, 성폭행 물증 확보하고도 “불구속 송치할것” 연락 안취해
월북이후 출금조치-영장 신청
배수로 인근서 발견된 가방서 물안경-환전영수증-옷 등 나와

합동참모본부 인천 강화군 월곳리 인근의 한 배수로에서 최근 월북한 탈북민 김모 씨(24)의 가방이 발견됐다고 27일 밝혔다. 김 씨는 강화도 북쪽 지역에 있는 철책 밑 배수로를 통해 바다로 빠져나가 헤엄을 쳐 북한으로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강화=뉴스1
합동참모본부 인천 강화군 월곳리 인근의 한 배수로에서 최근 월북한 탈북민 김모 씨(24)의 가방이 발견됐다고 27일 밝혔다. 김 씨는 강화도 북쪽 지역에 있는 철책 밑 배수로를 통해 바다로 빠져나가 헤엄을 쳐 북한으로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강화=뉴스1
18일경 북한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탈북민 김모 씨(24)가 범죄 피의자로 지목된 건 지난달 12일. 자신의 집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과 술을 마신 뒤 성폭행한 혐의였다. 김 씨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관련 증거물에서 김 씨의 DNA를 찾아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약 1개월 동안 김 씨는 월북할 준비를 해나갔다.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빼 달러로 환전했고 TV 등도 모두 처분했다. 심지어 주변 지인들에게 “북한에 돌아가겠다”고 공공연히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지난달 21일 한 차례 불러 조사한 것 외에는 김 씨에 대한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탈북민 신변보호담당관도 전화 통화 한 번 한 게 전부였다. 심지어 이미 월북한 뒤조차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다음 날쯤에야 출국 금지 조치했다.

○ 성범죄 피의자를 월북 이틀 뒤 영장 신청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이 김 씨의 소재 파악에 나선 건 18일경. 이날 새벽부터 행방이 묘연해진 김 씨는 이미 북한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다. 심지어 경찰이 움직인 건 김 씨가 ‘피해자를 죽이겠다’고 협박한다는 주변 제보 때문이었다.


뒤늦게 대응에 나선 경찰은 피해자 신변보호를 강화한 뒤 20일 출국 금지 조치했다. 그때까지 불구속 수사하던 김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건 21일이었다. 이후 위치 추적 등 신병확보 수사를 진행한 건 24일 전후. 거의 1주일이 지난 시점까지 김 씨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경찰 감시가 느슨했던 동안 김 씨는 월북 준비를 착착 진행했다. 17일 자신의 차를 타고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 갔다가 김포로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월북 경로를 미리 사전 답사했단 뜻이다. 김포에선 인근 마사지업소에 들르기까지 했다. 다음 날 새벽 택시를 타고 강화읍 월곳리로 간 김 씨는 오전 2시 20분경 내린 뒤 종적을 감췄다.

27일 이 인근에선 김 씨가 놓고 간 것으로 보이는 가방도 발견됐다. 가방엔 물안경과 옷가지, 환전 영수증 등이 들어있었다. 김 씨는 살던 집의 임대보증금을 빼고 그걸 달러로 환전까지 하면서도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다.


경찰 측은 “(김 씨의 범죄에 대한) 증거가 확보됐고 조사도 잘 받아서 별다른 소재 파악을 하지 않았다”며 “수사가 거의 마무리된 상태여서 조만간 불구속 송치할 예정이었는데 월북을 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 군 경계초소 인근 배수구로 빠져나가

김 씨가 월북한 출발점으로 알려진 월곳리에는 군의 경계초소 인근에 여러 개의 배수구가 있다. 사각형의 배수구는 가로세로 약 1.5m 크기로 성인 남성이라도 몸을 움츠리면 충분히 지나다닐 수 있는 구조다. 바로 위에 철조망이 설치돼 있지만 이 배수구를 따라가면 곧장 한강으로 연결됐다.

군 등은 김 씨가 18일에서 19일 사이 이 배수구 중 하나를 통해 한강 하구로 나간 뒤 헤엄을 쳐서 월북한 것으로 보고 있다. 27일 둘러본 현장엔 약 10∼20m 옆에 경계초소가 있지만 지키는 병력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한 주민도 “평소에도 경계 근무를 하는 군인은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김 씨는 2017년 8월 탈북해 남한으로 올 때도 이 인근으로 건너왔다. 강화도에서 북한 땅은 최단 거리가 1.3km 정도로, 당시 김 씨는 페트병 등을 몸에 두르고 헤엄쳐 왔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군사전문가는 “일반인이 2번이나 남북으로 헤엄쳐 건널 정도라면 훈련을 받은 전문가라면 제 집처럼 드나들 수 있을 것”이라며 “가장 경계가 삼엄해야 할 지역이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됐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강승현 byhuman@donga.com / 수원=이경진 / 김포=김태언 기자
#탈북민 월북#성폭행 불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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