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천백배로 갚아줘야 한다”…북한이 일본에 적개심 갖는 이유는?[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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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북한의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일본과의 역사 갈등에 대해 가지는 태도는 구체적으로 어떠한지, 국민들의 여론은 정부와 같은지, 실제 북-일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 궁금합니다.

김해인 연세대 철학·지구시스템과학 15학번(아산서원 14기)





A.
안녕하세요? 김해인님. 흥미로운 질문 감사합니다.

일본에 대한 북한 당국의 구체적 태도, 이에 대한 북한 주민의 태도, 북일 관계에의 영향에 대해 질문을 주셨네요. 열심히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김해인님의 말씀과 같이 일본에 대한 북한 당국의 입장은 대단히 비판적입니다. 최근 북한의 기사를 볼까요?

2018년 12월 13일자 노동신문.
2018년 12월 13일자 노동신문.


북한에는 평양뿐 아니라 지방에도 교양관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위의 사진과 같이 북한 당국은 일본이 함경북도 주민들에게 가한 가혹행위를 재현하는 모형을 만들어 일본의 범죄행위를 생생하게 교육 시킵니다. 사실인지는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공사장에서 나어린 조선인 처녀를 제물로” 바쳤다는, 관람자의 이성보다는 감성을 자극하는 교육을 주로 하죠. 그래서 “우리는 천백배로 갚아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은 ‘일본은 성노예범죄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제목의(2018년 9월 14일, 16일, 20일, 23일자) 정세론 해설을 시리즈로 내놓기도 했습니다.

일본이 “조선녀성들을 상대로 인륜에 역행하는 대범죄”를 저질렀다면서, 간혹 ‘남조선 고등학교들에서 작은 성노예소녀상 세우는 운동을 적극 전개’(노동신문, 2017년 3월 29일자)라는 기사도 내죠. 그래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모든 ‘합의’를 무효로 하고, 근본적인 해결을 해야 한다는 주장합니다.

이와 같은 북한의 태도는 민족적 입장일 수 있지만, 북한의 정통성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해방이후 북한은 김일성의 정통성을 항일운동에서 찾았습니다. 김일성은 1930년대부터 반일민족해방 투쟁을 했고, 그것이 북한 정부 수립의 출발점이 되었거든요. 그 핏줄을 이어받았으니 김정일과 김정은 역시 정통성이 있다는 것이죠. 어떤 정치체제라고 해도 체제의 지속을 위해서는, 통치자의 정통성은 대중과의 관계 속에서 구축되어야 합니다. 일본에 대한 북한의 감정적 교육은 이런 맥락도 포함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북한 주민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북한 주민은 어렸을 때부터 일본에 대해 적개심을 갖도록 교육받습니다. 소학교(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어머니, 오늘은 왜놈 까기를 하고 놀았어요”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그래서 이탈주민과 인터뷰를 해보면, 일본에 대해서는 자동적으로 “일본놈”이라고 말하죠. 언어가 사유를 규정한다면, 북한은 언어를 통해 유아 때부터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체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북한에서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상교육에는 영화가 주요 도구인데요, <살아있는 령혼들>, <홍길동전>, <임진년의 심마니들> 등 북한은 일본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상당수 제작했습니다. <살아있는 령혼들>에서는 일본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조선인들이 탄 배에 폭탄을 설치하여 조선인들이 죽는, <홍길동전>에서는 홍길동이 일본의 닌자와 싸우는, <임진년의 심마니들>에서는 조선의 인삼을 강탈하는 일본군들의 장면이 있습니다.



사실 원작 <홍길동전>에서 닌자는 등장하지 않죠. 그렇지만 북한은 서자 홍길동이 정의를 위해 일본 닌자와 싸운다는 설정을 합니다. 다소 개연성이 없지만, 사상교육을 위해서는 무리한 설정도 가능한 것이죠. 그런데 김정은 시대의 텔레비전 드라마 <임진년의 심마니들>(2018)은 흥미롭습니다. 조선시대에 일본이 개성인삼을 탐내서, 관의 벼슬아치랑 손잡고 조선 인삼을 훔친다는 설정이거든요. 개연성 있는 서사와 스펙터클이 맞물려 일본에 대한 반감을 자연스럽게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일본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여론이 북한 당국과 동일한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북한의 입장은 북일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글쎄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쉽게 말씀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국제관계란 일차방정식이 아니라 다차방정식이거든요. 다만 일본에 대한 북한의 비난 하나가 북일관계에 영향을 준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우리는 1960년대 한일협정 시 어느 정도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만약 북한이 비난을 멈추고 일본과 수교를 원한다면, 일본은 여러 각도로 생각하겠지요. 북한이 보상금을 요구할까? 보상금을 주고, 북한을 통해 러시아 천연가스를 받는 게 이득인가? 북한과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해결하면 국내선거에서 유리할까? 국제사회에서 견제가 들어오지는 않을까? 계속 비난하라고 하고 이 상태로 지낼까? 제가 단순하게 표현했지만, 여러 차원이 얽혀있는 것이 북일관계의 현주소인 듯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에 대한 북한의 감정적 입장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감정적 입장이 북한과 일본에서 어떻게 변용되는가를 관찰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정수 통일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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