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 맡길 땐 나랏일, 사고나면 나몰라라 황당한 軍 보험

  • 뉴시스
  • 입력 2018년 11월 8일 09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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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모씨는 최근 군대에 보낸 아들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고 가슴이 철렁했다. 올해 4월 운전병으로 입대한 아들이 운전한 차량이 사고가 났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지난 9월14일 오전 육군 모 무대에서 운전병으로 복무 중인 최씨의 아들은 훈련 중 ‘레토나’(전술차량)를 운행하다 마주오는 차를 피하는 과정에서 과실로 차를 반(半)전복시키는 사고를 일으켰다.

이 사고로 당시 차량 뒷좌석에 타고 있던 병사 5명과 옆자리에 탑승했던 중사가 부상을 당해 국군 홍천병원으로 이송 후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아들과 동승한 간부, 병사들은 경상에 그쳤지만 황당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현행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교통사고처리법)에 따라 일반 과실의 경우 보험에 들어 있으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도록 돼 있다. 그러나 군용차량은 일괄적으로 보험에 들어있음에도 운전병인 아들에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결국 최씨는 피해자 병사 5명에게 치료비와 진단비, 후유증 등에 대한 명목으로 각각 몇십 만원의 합의금을 지불해야만 했다. 운전병에게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합의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아들이 형사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군용차량 보험 문제는 비단 최씨의 아들 문제만이 아니다. 훈련이나 공무 중 군용차량으로 사고가 났지만 미비한 현행 법 체계와 군용차량 보험약관 문제로 운전병이 합의금을 물었던 사례는 늘 있었다. 사고가 나면 월 40만6000원(병장 기준)을 받는 운전병들은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의 합의금을 물어야 했다.

최씨는 이에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육군 일병 운전병에게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해당 청원은 이날까지 5500명이 넘은 국민이 동의했다.

최씨는 글에서 “현재 우리나라 군대에서는 국가와 보험회사 간 계약 약관은 군인이 민간인과의 교통사고 및 일반사고는 보험으로 처리가 된다”면서 “군인과 군인의 교통사고 및 일반사고는 보험을 받을 수 없다는 조항으로 군대에서 사고가 발생 될 시 개인(군인)이 치료비 및 후유증 까지 현금으로 합의를 해야 된 다는 현실에 국민의 한사람으로, 군인의 아버지로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갖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예를 들면) 40명을 태운 버스 운전병이 경미한 교통사고가 발생될 시에 운전병 한 명이 탑승 병사 40명 상대로 손해 배상 합의를 봐야 된다”며 “이 모든 일을 알고 있다면 어떤 부모가, 어떤 신병이 운전병으로 선택하겠냐”고 반문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현재 각 부대 차량에는 보험계약이 돼 있고 사고가 나더라도 민간인 피해자에 대해서는 무제한으로 보상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보험 ‘특별약관’은 피해자가 군인(군무원)이거나 군 차량간 사고일 경우 ‘국가배상법’에 따라 국가가 이중으로 배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 보상하지 않도록 약정돼 있다.

이에 따라 최씨의 아들 사례처럼 운전병의 단순한 과실일지라도 동료 군인들에게 교통사고를 일으킨 경우 보험이 적용되지 않게 돼 있어 개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교통사고처리법에 따라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군용 차량이 보험에 들어있지만 현행 법률 미비와 보험 특별약관의 문제로 운전병들에게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인 것이다.

최씨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사고를 낸 아들의 책임이 일차적인 것”이라며 “합의금 액수의 문제가 아니다. 수사기관에 책임을 묻고 싶지도 않다”고 밝혔다.

그는 “단지 (현실과 맞지 않는) 보험체계를 지적하고 싶었다”며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 입장에서 가계가 어려운 젊은이들이 (합의금 때문에) 탈영이나 자살을 생각하고 어긋날까봐 오히려 걱정된다”고 말했다.

최씨의 말처럼 합의금 때문에 생계가 어려운 운전병들의 경우 이중고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폐쇄된 군 생활에서 합의금 몇 푼에 영외이탈이나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또 군의 한 관계자는 현행 군용차량 특별약관에 대해 “형사처벌이라는 약점을 빌미로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등 현행 제도가 악용될 소지가 있어 왔다”고 밝혔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간사는 “우선적으로는 군에서 운영하는 차량들이 대인·대물 보험이 의무적으로 돼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한 특별약관 조항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며 “사회와 마찬가지로 군에서 운용하는 차량도 원칙적으로 적용되게끔 보험조건이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국방부도 뒤늦게 이 같은 제도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청과 교통사고처리법 특례조항 신설을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현재 교통사고처리법에 명시된 ‘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된 경우에는 운전자에 대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조항에 ‘국가배상법으로 보상되는 경우’도 함께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장병들의 부담감이 최소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관련 법률을 빠른 시일내에 개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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