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불신 풀려면 수사해야” vs “수사의뢰땐 법관 독립성 침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사법행정권 남용’ 둘로 갈라진 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 처리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전국의 각급 법원장이 7일 대법원에 모여 간담회를 연다. 일선 법원에서 사법행정을 총괄하고 있는 고위 법관들의 의견인 만큼 사태 추이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과 각급 법원장 등 36명은 이날 오전 10시 ‘특별조사단 조사결과 관련 현안에 대한 토의’를 안건으로 전국법원장간담회를 진행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참석하지 않는다. 간담회에서는 의혹 관련자를 형사 조치하는 것이 적절한지 등을 놓고 법원장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방법원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판사들을 대표하는 만큼 소속 판사들의 의견을 종합해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며 “개인적 의견을 따로 묻는다면 법관의 한 사람으로서 의견을 적절하게 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사법 불신 해소 위해 수사 필요”

판사들이 현재 둘로 쪼개져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자에 대한 형사 조치 여부 때문이다. 특별조사단의 3차 조사 결과 공개된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에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을 추진하기 위해 청와대와 주요 재판을 놓고 거래를 하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후 소장 판사들을 중심으로 관련자를 형사 조치하라는 목소리가 법원 내부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젊은 판사들은 “재판 거래 의혹이 사법부 불신으로 번지고 있어 의혹 해소를 위해 수사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수사 의뢰나 고발은 이 같은 사태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표명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이들은 보고 있다. 특히 사법행정권 남용 문제만큼은 수사와 기소를 통해 법정에서 다뤄야 해결될 문제라고 본다. 소장 판사들은 또 현실적으로 이미 시민단체들이 검찰에 여러 건 고발을 한 만큼 수사를 피할 수 없다는 의견도 밝히고 있다.

젊은 판사들이 주축인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들은 4일 판사회의를 열고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통한 진상 규명을 촉구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고 서울중앙지법 배석판사들도 “형사 책임 여부를 밝히기 위해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천지법 단독판사들과 대구지법 단독판사들도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았다. 부산지법 배석판사와 부산고법의 판사, 배석판사들도 관련자들의 형사상 조치를 요구했다.

○ “고발하면 판사 중립성 사라져”

고참 판사들은 법원의 문제는 내부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수사 의뢰나 형사 고발에 대해 신중한 접근을 주문하고 있다. 이들은 “대법원장이 형사 고발을 하는 순간 판사로서의 중립성은 사라진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대법원의 1∼3차 조사로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판사들 간의 반목과 갈등을 풀고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도 극단적인 선택은 자제해야 한다는 데 지방법원 부장판사 이상 고참 법관들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고위 법관으로 구성된 서울고법 부장판사들은 5일 판사회의를 열고 “법원이 직접 수사를 의뢰하면 법관 독립이 침해될 수 있다”며 수사 주장에 처음으로 제동을 걸었다.

또 고참 판사들 사이에서는 5일 추가 공개된 문건을 근거로 확정 판결까지 나온 사건으로 거래를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협상추진전략’ 문건에 박근혜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로 등장한 24건의 재판 중 19건의 판결이 문건 작성 시점인 2015년 11월 19일 이전에 이미 내려졌다. 문건 작성 당시 ‘금속노조 발레오전장지회’ 사건 등 5건은 대법원이나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젊은 판사들이 고법 부장판사들의 결의 내용을 공개 반박하면서 법원 내 세대 갈등 양상까지 일부 나타나고 있다. 한 지방법원의 판사는 6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종래에 방관적으로 있다가 이제서 수사반대만 하기 보다 이 사태에 대한 대안을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김 대법원장은 7일 법원장간담회에서 나오는 의견을 듣고, 11일 예정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결과를 받아본 후 후속 조치에 대한 최종 입장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김윤수 ys@donga.com·이호재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법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