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강조에 젊은층 거부감… ‘가족행복 지원’에 방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출산 정책 어젠다 전환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서 ‘저출산 극복’ ‘인구절벽 탈출’ 등의 용어를 빼는 대신 ‘아이를 키우는 행복 찾기’ ‘가족이 행복한 사회’ 등의 개념을 강조하기로 한 것은 출산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부정적 인식을 바꿔야만 근본적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출산 대책에서 ‘저출산’을 빼는 발상의 전환으로 저출산 대책의 ‘전면적 리빌딩’에 나서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각에선 100조 원 넘게 쏟아부은 저출산 대책이 사실상 실패로 결론나자 용어 바꾸기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 저출산 대신 가족행복 앞세워 정책 대전환

보건복지부는 민간 위주로 재편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통해 저출산 대책을 전면 개편할 계획이다. 그 첫 단계가 새로운 저출산 대책의 철학을 담은 캐치프레이즈를 만드는 일이다. 강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운영지원팀장은 “20, 30대와 소통하는 창구를 만들어 이들의 의견을 캐치프레이즈에 담겠다”고 했다. 저출산 대책의 새로운 방향이 결정되면 연내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를 열어 향후 4년간의 세부 정책을 구체화한다는 방침이다.

복지부는 무엇보다 저출산 수치를 앞세워 출산율 목표치를 달성하는 정책 목표를 수정할 계획이다.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선진국들은 이미 ‘인구정책’ ‘출산정책’이란 명칭 자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아이를 마치 제품처럼 생산한다’는 권위적 국가주의로 비쳐 젊은층의 거부감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젊은이에게는 출산율이 오르는 것과 나의 삶이 개선되는 것이 연결되지 않는다”며 “저출산 대책은 단순히 출산율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두기보다 사회환경과 개인의 삶을 개선함으로써 자발적으로 출산을 유도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다만 이 부연구위원은 “자칫 ‘저출산’이란 용어를 정책에서 한꺼번에 빼버리면 저출산 극복을 정부가 포기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만큼 정책 기조를 완만하게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기존의 저출산 대책, 왜 실패했나

저출산 대책 기조를 ‘가족행복 정책’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동안의 저출산 대책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돼 있다. 정부는 2006년 ‘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06∼2010년)’을 시작으로 5년마다 저출산 대책을 내놓았다. 올해까지 12년간 저출산 대책에 쏟아부은 예산만 124조2000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은 2006년 1.12명에서 계속 하락해 올해는 역대 최저인 1.03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연간 신생아 수도 2006년 44만8153명에서 올해 35만 명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대로 가면 향후 5년 내에 연간 출생아 수 30만 명 붕괴도 시간문제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최근 논란이 된 교사 임용 절벽 사태는 수년 전부터 저출산으로 예견된 문제였다”며 “그럼에도 범정부 차원에서 저출산과 각종 사회 현안을 연결하는 종합 대책을 만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 ‘가족행복 정책’엔 무엇을 담나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과 젊은 세대의 인식 변화 등 달라진 사회 패러다임에 맞춰 저출산 대책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헬조선에서 아이에게 물려줄 희망이 없다”고 여기는 젊은 세대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지금까지 정부는 출산율 제고에 매달려 임신 확산에만 주력했다. 지난해 12월 행정자치부는 지역별 가임기 여성 수를 표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제작했다가 맹비난을 받았다. 올해 2월에는 ‘저출산 문제의 원인은 여성의 고스펙’이라는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가 논란이 됐다. 이강호 복지부 인구아동정책관은 “젊은 세대의 출산 인식이 달라진 만큼 이에 맞게 저출산 정책을 재설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예산 지원을 출산을 많이 한 가구에 집중해 저출산 대책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 7월 도입되는 아동수당이나 어린이집 무상보육 정책 등 보편적 저출산 대책이 출산율 제고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프랑스처럼 자녀수가 늘수록 혜택을 크게 늘려줘야 한다는 얘기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은 “애를 낳을 때마다 파격적인 지원을 해주는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출산 정책#어젠다 전환#가족행복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