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 요구액 424조… 복지-국방 늘고 SOC분야는 급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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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노믹스’ 슈퍼예산 윤곽 드러나


정부 각 부처들이 내년 예산으로 올해보다 6% 늘어난 424조 원을 기획재정부에 요청했다. 복지, 교육, 국방 분야의 예산 요구액이 크게 늘어난 반면 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요구는 대폭 줄어들었다. ‘소득 주도 성장’을 천명한 새 정부의 재정운영 기조가 강하게 반영된 예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보다 예산 증가율이 배에 달하면서 증세 논의도 다시 불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늘어난 요구액 중 상당 부분이 4대 공적연금 등 매년 의무 지출이 자연 증가하는 사업들이라 향후 재정 부담이 갈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 424조 슈퍼 예산

기재부는 정부 부처들이 내년도 지출 예산안으로 424조5000억 원을 요구했다고 12일 밝혔다. 올해 예산보다 6.0% 증가한 규모다. 기재부는 정부 부처 요구안을 토대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편성해 9월 1일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최종 예산안의 밑그림이 되는 정부 요구안 규모가 정해짐에 따라 내년도 최종 예산은 425조 원 안팎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에는 각 부처들이 398조1000억 원을 요구했고 기재부 심의와 국회 심사를 거쳐 400조5000억 원이 최종 확정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2015년과 지난해에는 요구 총액이 전년 예산 대비 각각 4.1%, 3.0%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올해는 새 정부 출범을 맞아 부처들이 적극적으로 사업 예산을 짜면서 요구안이 늘었다”고 말했다.

분야별로는 복지, 교육, 연구개발(R&D), 국방 등 7개 분야에서 요구액이 늘었다. 특히 보건·복지·고용 분야가 크게 증가했다. 기초생활보장급여 수혜 대상이 확대되고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 지출액 등이 늘면서 올해보다 8.9% 늘었다. 킬 체인(북한 핵 시설 등을 감시하고 도발 임박 시 선제 타격하는 무기체계) 도입, 장병 처우 개선 등에 필요한 국방 예산 요구액도 올해보다 8.4% 증가했다.

교육 분야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국고 지원이 늘면서 올해 대비 7.0% 늘었다. R&D는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정보통신기술(ICT) 예산 등이 강화되며 1.3% 늘어났다.

○ SOC, 철도·도로 건설사업 중심 15.5% 뚝

반면 SOC와 산업육성, 에너지 사업 등 5개 분야에서는 올해보다 예산을 적게 요구했다. SOC 예산 요구액은 철도·도로 건설사업을 중심으로 15.5% 감소했다. 동서고속도로, 원주∼강릉 고속철도 등 1조 원 안팎의 예산이 드는 굵직한 철도·도로 건설 사업이 없어 예산을 줄였다는 게 국토교통부 등의 설명이다.

문화·체육·관광 분야 역시 요구액이 5.0% 줄어 감소 폭이 큰 편에 속했다. 내년 2월 열릴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개최 준비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관련 예산이 감소했다. 산업 분야의 경우 에너지·자원 개발 예산이 줄며 요구액이 3.8% 줄었다. 문재인 정부가 탈핵(脫核)·탈원전 방침을 밝히면서 산업통상자원부가 신규 원전 설계비용 등을 요구하지 않은 영향이 컸다.

○ “6∼7% 재정지출 이어가려면 ‘증세’ 동반돼야”

정부 예산의 무게중심이 복지, 교육, 국방 분야로 쏠린 데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부터 밝혀 온 ‘J노믹스’ 구상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공약집 등을 통해 △사회적 약자 지원 강화 △책임국방 △지방분권 강화 등을 강조했다. 특히 건설·산업 분야 국책사업 등을 통해 나랏돈을 기업으로 흘려보내는 대신 공공 일자리와 기초연금 등의 형태로 가계에 직접 지급하는 방식의 ‘소득 주도 성장’을 앞세웠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당초 문 대통령이 공약한 연평균 7%의 재정지출 증가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J노믹스의 주축인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이 지출 요구액을 크게 늘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적극적인 확장 재정 기조를 임기 말까지 이어가려면 증세 등 재원 마련책 보강이 절실하다. 하지만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포함한 재정당국 관계자들은 ‘조세감면 혜택 축소’ 등 원론적인 수준의 발언만 되풀이할 뿐 뚜렷한 재정 확충 방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 들어 나타난 경기 회복세가 주춤해지면 세금이 덜 걷혀 향후 막대한 재정부담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임주영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입과 세출의 균형을 맞추려면 경상 국내총생산 성장률만큼 예산을 늘려야 한다”며 “부동산 시장이 하강 국면에 접어들고 수출 여건도 불확실해 장기적으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세종=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j노믹스#문재인 정부#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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