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병섭]대통령 견제만큼 중요한 책임 국정 수행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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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국가리더십센터소장
김병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국가리더십센터소장
이낙연 국무총리가 청문위원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책임총리에 대한 의지와 복안이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하는 장치가 필요한데, 헌법에 보장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는 책임총리가 된다면 어느 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에 대한 부서권, 국무위원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 그리고 내각통할권 등의 헌법적 권한을 적절히 행사할 수 있다면 대통령의 독단과 전횡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러한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그저 대통령을 대신하여 책임만 지는 ‘방탄총리’, ‘로봇총리’가 많았다. 심지어 황교안 전 총리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만 책임성으로 인식하고, 최순실 등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을 막기는커녕 이에 대한 의혹 제기에 대해 “불법에 해당하는 유언비어는 의법 조치도 가능하다”고 하여 총리의 책임을 방기하였다. 그래서 국회와 국민은 임명동의권자인 국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도 책임성의 일부로 인식하고 ‘국민에 대한 책임’을 우선시하여 대통령의 헌법 및 법률 위반에는 분명한 반대를 밝히는 책임총리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에 대한 견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국민을 위한 국정 수행이기 때문에, 책임총리제를 제대로 시행하려면 국무회의 활성화,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정례회의 등 참여정부 때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해찬 전 총리는 국정 운영과 관련하여 서로 엇박자가 나면 안 되기 때문에 매주 월요일 두 시간씩 오찬을 했다고 한다. 총리가 먼저 사안에 대한 의견을 정리해 일요일까지 서면으로 보내면, 대통령이 읽고 오찬 때 의견을 말하고, 그것을 토대로 총리가 그다음 날인 화요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형식이다. 현재 대부분의 부처가 세종시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국정 운영이 더욱 필요하다.

하지만 총리의 국정통할권을 확대해석하여, 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내각책임제로 운영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국민이 선출한 대표는 대통령이지 국무총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 헌법과 정부조직법이 각 부처의 업무관할권을 소속 장관에게 두는 책임장관제를 채택하고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책임총리제, 책임장관제를 실현하려면 이들 간의 관계를 슬기롭게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이낙연 총리가 제시하는 방향은 흥미롭고 인상적이다. 그는 총리의 역할로 첫째, 국정 추진 속도와 부처 업무 속도, 둘째, 국정 방향과 각 부처의 방향, 셋째, 유관 부처 간 관계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는 것을 제시했다. 특히 첫째와 둘째는, 대통령을 포함해 정권을 잡은 쪽에서는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임기 중에 마치려고 하는 반면 각 부처는 국정의 안정성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구하려 한다는 점에서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조화시키는 것을 국무총리의 역할로 설정하였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것은 또 국회 여당과 야당 간의 갈등을 조화하려는 시도로도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시사점을 제시한다.

이러한 역할 설정은 때로는 대통령과 참모진을 포함한 청와대와 긴장관계를 형성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도 이낙연 총리는 ‘임금에게 하기 어려운 일을 구하는 것을 공(恭)이라 하고, 훌륭한 도를 말하여 사심을 막는 것을 경(敬)’이라고 하는 맹자의 말씀을 따라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이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책임총리가 할 일이다.
 
김병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국가리더십센터소장
#이낙연 국무총리#로봇총리#황교안 전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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