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수용]“왜 못 막았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구성원을 존중하고, 본인에 대한 평가를 감정적으로 듣지 않는다.’ 다국적 대학교수 5명으로 구성된 한 연구진이 지난해 직장인 집단 인터뷰를 통해 결론 내린 좋은 리더의 특징이다. 경영전문가 짐 콜린스도 최고의 리더십으로 겸손을 꼽았다. 김창희 싱가포르 리퍼블릭 폴리테크닉대 교수는 “겸손하지 않은 권력은 위험하다는 금언을 곱씹어 봐야 할 때”라고 했다. 예부터 지장(智將), 용장(勇將)보다 덕장(德將)을 더 중시했다.

 ▷1992년 대선 직전 법무부 장관에서 막 내려온 김기춘 씨가 부산 기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말을 했던 ‘초원 복국집 사건’은 특권층의 오만을 보여줬다. 당시 19건의 발언을 분석한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최근 저서 ‘특혜와 책임’에서 “언어 훈련이 돼 있지 않고 지위에 맞는 독서가 모자란 상태”라고 비판했다. 한국 특권층은 개인의 영달만을 위해 고위직을 차지했기 때문에 내면에 이기심만 가득할 뿐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15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공개된 녹취록 속 최순실 씨는 ‘은폐와 조작의 달인’이다. 그는 10월 27일 K스포츠재단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왜 정현식 총장(K스포츠재단)이 얘기한 거를 못 막았어”라고 말했다. 정 전 사무총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최 씨 지시로 SK를 찾아가 80억 원을 요구했다’고 폭로한 것을 막지 못했다고 질타한 것이다. 다른 녹취록에선 “걔네들이 완전 조작이고, 얘네들이 이걸 훔쳐서 했다는 걸로 몰아가야 한다”는 말도 했다.

 ▷최 씨의 발언들을 글로 써 보면 가관이다. 내용 자체가 황당한 데다 문맥도 통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사람을 ‘걔’나 ‘얘’로 통칭하거나 안(안종범), 고(고영태) 등 이름을 생략한 채 성만으로 불렀다. 특권에 걸맞은 소양이 부족한데도 툭 던진 한마디면 안 되는 일이 없었기에 자기 위에 아무도 없다는 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호’가 특권을 즐기며 오만으로 가득 찬 이런 최순실을 존재하게 했다는 게 오늘의 비극이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리더십#김기춘#최순실#박근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