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정치’ 밀어내는 촛불의 강물… 우리는 살아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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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으로 번진 촛불]신현림 시인의 촛불집회 참관기

대구-광주서도 함성 19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서울을 비롯해 대구 광주 등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이날 대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선 시민 2만5000여 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한 가운데 시국대회가 열렸다(위쪽 
사진). 같은 날 광주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민주대성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횃불을 든 채 옛 전남도청 분수대를 
둘러싸고 있다. 대구=사진공동취재단·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대구-광주서도 함성 19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서울을 비롯해 대구 광주 등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이날 대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선 시민 2만5000여 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한 가운데 시국대회가 열렸다(위쪽 사진). 같은 날 광주 동구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민주대성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횃불을 든 채 옛 전남도청 분수대를 둘러싸고 있다. 대구=사진공동취재단·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노란 은행잎 흩날리는 광화문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 시민들은 함께 촛불을 흔들며 함성을 질렀다.

 이 뜨거운 외침은 가슴을 두드렸다. 또다시 민주시민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대통령 자신이 진정 무얼 잘못했는지도 모른다는 게 더 충격이었다. 남녀노소, 청소년과 아이들까지, 무능하고 부패한 리더십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보다 못해 다들 뛰쳐나왔다. 내 뒤에서 출렁이는 촛불이 아름답다고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몸을 태워 빛을 만드는 촛불은 절박한 시민의 마음 그대로였다. 촛불은 나쁜 역사, 나쁜 정치가 되풀이되지 않게, 스스로 나온 시민들을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주황빛 촛불은 밤을 더 깊게 만들었고, 온몸 깊숙이 스며들어 왔다. 대부분 좌파, 우파를 넘어 정의를 사랑하며, 상식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한낱 시민이다. 시민들이 얼마나 인간적으로 소통하며 나라를 제대로 세우고 싶어 하는지, 그 열망과 꿈을 함성 속에서 들었다. 가수 전인권이 부르는 애국가와 박수소리에서도 스며 나왔다.

 우리 삶은 사랑으로 이뤄지며, 소통에 의해 이어진다. 이 단순한 진실도 대통령은 잊고 있다. 아예 고민과 노력도 안 하는 것처럼 보였다. 노력이 능력이고, 실력이다. 국민의 말에 귀 기울이고 집중하려면 자신과 거리를 두는 일이 먼저인데, 이걸 못하니 어른이 못 된 것이다. 왜냐하면 어떻게 저런 ‘괴물’이 있나 비명을 지르게 만든 최순실 씨 쪽 사람들과 40년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노란 은행잎 흩날리는 늦가을에 누구와 친하느냐가 인생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뜨겁게 목격했다. 우리의 불안과 괴로움은 서민경제가 곤두박질치고, 국가운명까지 위태롭다는 데서 온다. 대통령이 국민을 챙긴 게 아니라, 최 씨 일가를 챙기고, 부정하게 돈을 끌어 모았다는 데 국민들은 더 절망했고, 참담하도록 부끄러웠다. 그깟 주름살에 연연해 이른바 세월호 7시간 의혹까지 나돌다니, 그야말로 막장드라마요, 가관이다.

 이날 촛불집회를 통해 퇴색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았다. 공부는 너무 시키는데, 생각 없는 로봇을 만드는 교육, 영혼에 대한 고뇌가 없으니 ‘먹방’으로 도배를 하는 TV, 술과 쾌락, 스포츠. 결국 말초감각을 탐닉하는 문화, 저질의 상업주의가 한국에서 천박한 자본주의를 키웠고, 무능력한 지도자를 뽑았다. 책 안 읽고 공부 안 하는데, 고뇌가 있을 수 없고, 괴로워하지 않는데, 염치가 없는 건 당연하다. 현명함도 잃고, 죄의식과 수치감마저도 거북등처럼 딱딱하게 만들고 있음을 절실히 느꼈다. 시험만 잘 보고 경쟁사회에서 이기는 것만 가르치는 얄팍한 문화. 결국 우리가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뼈아픈 성찰도 해봤다. 은행잎 흩날리는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의 함성에는 나와 같은 뼈아픈 성찰이 담겨 있었다.

 토요일의 행진은 무엇이 국민에게 최선인가, 무엇이 국민을 행복하게 할까에 대한 고민 없는 기성의 정치문화를 갈아엎겠다는 열렬한 시민혁명이었다.

 무엇을 더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가. 은행나무도 가을이면 노란 잎을 떨구는데, 대통령만이 아니라 모든 정치인은 더운 피만 아는 진드기처럼 굴지 않길 바란다. 우리는 사람이지 않은가.

 어쨌든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함은 신성함에 가 닿는다. ‘민심촛불’은 태풍에도 꺼지지 않고 어떤 불의에도 지지 않는다. 26일에는 보다 혁신적인 움직임들이 필요하다. 누가 해도 똑같은 무책임한 ‘도적놈’들이 아니라, 국가의 진정한 주인이 국민임을 알고 정직하고 똑똑하게 일하는 진정한 지도자를 간절히 바란다. 나만 행복하면 뭐하나. 함께할 때 행복도 두 배인 걸. 내 가슴에 담아둔 어느 수도사의 말이 떠오른다.

 “누구든 당신을 만나면 더 행복해지게 하라.”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현림 시인
#최순실#박근혜#재단#비리#청와대#검찰#피의자#공모#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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