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朴대통령, ‘내각 통할 총리’ 권한 못 밝히는 이유 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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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정세균 국회의장을 전격 방문해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에 좋은 분을 추천해 준다면 총리로 임명해서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에서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회담 개최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김병준 총리 지명 철회와 국회 추천 총리 임명’을 수용하는 발언이다. 그러나 ‘내각 통할 총리’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가 분명치 않다. 정 의장이 ‘정리’를 요청하는데도 박 대통령이 “신임 총리가 내각을 통할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권한을 보장하겠다”고 동어반복을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현행 헌법에도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고 장관의 ‘임명 제청’과 ‘해임 건의’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이를 지키지 않았을 뿐이다. 어제 박 대통령의 발언은 3일 김병준 총리 후보자가 “헌법이 규정한 권한을 100% 행사해서 개각을 포함한 모든 것을 국회 및 여야 정당과 협의해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고 내치(內治)는 총리가, 국방과 외교의 외치(外治)는 대통령이 맡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과도 거리가 있다.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이나 2선 후퇴는 입도 떼지 않았다.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치는 발언을 하고도 박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가장 큰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인 것은 국민을 분노케 만드는 소리다. 그토록 책임을 다하는 대통령이 일개 사인(私人) 최순실 씨에게 정책과 예산까지 주무르게 했단 말인가.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책임을 다하겠다니, 국회가 추천한 총리를 임명한 다음 ‘대통령의 명’을 내리며 대통령 권한을 행사할 복안이 아닌지 의문이다. 이 정도 제안이면 야당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또 어떤 비선이 조언했는지도 궁금하다. 주말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일단 위기를 모면하려는 의도라면 박 대통령은 아직도 사태의 위중함을 모른다는 얘기다.

 국민이 위임한 국가권력을 최 씨 일가에 넘겨준 박 대통령은 헌법적 정통성을 잃었다. 하야(下野)를 외치는 민심에 용서를 구하려면 박 대통령은 최소한 내정에선 물러서야 한다. 헌법학자들도 우리 헌법의 내각책임제적 요소를 살려 운영할 경우 책임총리가 내치를 총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석하고 있다. 만일 박 대통령과 친박(친박근혜) 세력이 ‘총리의 내각 통할’이라는 헌법 문구에 기대어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면 불행한 앞날이 기다릴 수도 있다. 여야 대표 회동을 하든지, 대국민 담화를 다시 하든지 박 대통령은 이른 시일 안에 신임 총리의 권한과 자신의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야 정국 수습이 가능하다. 한꺼번에 내려놓고 국민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국회도 일단 총리 추천 절차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만난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혁명적 사태라도 합법적 룰로 푸는 게 순리”라고 했다. 청와대가 경제부총리 문제도 국회와 협의하겠다고 한 만큼 경제 위기 상황에 ‘경제부총리 실종 사태’를 오래 방치해서는 안 된다. 야당은 “대통령이 살라미 전법을 쓴다”고 비난하면서 자신들도 그때그때 정략에 따라 시간을 끌고 있다. 무책임한 야당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도 한계 수위까지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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