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자들 잠적하는데 압수수색도 안해… 무기력한 검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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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미적대는 檢수사]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60) 씨 의혹 사건이 불거진 뒤 검찰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못해 극도로 몸을 사린다는 비판이 많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최 씨와 관련한 메가톤급 의혹이 쏟아졌지만 검찰은 수사 초기 시민단체의 고발장을 바탕으로 수사 범위를 ‘재단 자금 모금 과정의 불투명성 규명’에 한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안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검찰은 언론 보도로 최 씨가 대통령의 연설문마저 사전에 입수했다는 증거가 드러나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 청와대 눈치 보며 무기력한 검찰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검찰은 대기업 비리 수사에서 통상 200명이 넘는 검찰 인력을 투입하곤 했다. 올해 6월 롯데그룹 비리 수사에서 서울중앙지검은 3차장 산하 인지 부서 3곳을 동원하며 검사 및 수사관 240여 명을 압수수색에 투입했다. 비슷한 시기 대우조선해양 수사에 착수한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은 200여 명의 검찰 요원을 압수수색에 투입했다. 환부를 적기에 도려내기 위해선 ‘군사작전’처럼 대규모 인력을 한꺼번에 투입해 전광석화로 핵심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는 게 당시 수사팀의 인식이었다.

 하지만 ‘게이트’로 비화하고 있는 최 씨 사건은 의혹이 불거진 지 한 달이 넘도록 검찰의 압수수색이 한 번도 진행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 쓸 순 없다”는 논리로 수사에는 순서가 있다고 항변한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미루는 사이 최 씨 및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과 관련한 자료는 이미 대거 폐기됐거나 앞으로도 폐기될 수도 있다. 또 언론이 중요 자료를 확보해 보도하고,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달 20일 최 씨의 실명이 포함된 의혹 보도가 나온 뒤 시민단체는 같은 달 29일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댄 대기업과 안종범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만 해도 검찰 내부에서는 기업인들이 “강제로 돈을 뜯겼다”고 진술할 리 없는 만큼 구체적 혐의를 적용하는 게 마땅치 않다는 시각이 팽배했다. 이 때문에 고발장이 접수된 지 일주일 뒤인 이달 5일에 해당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부장 한웅재)에 배당했다. 형사8부는 통상적인 고발 사건을 처리하는 부서다. 배당 이후에도 검찰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 자취 감추는 핵심 수사 대상들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미적대는 사이 최 씨는 독일로 출국했고, 관련자들도 해외에 체류하거나 국내에서 잠적하고 있다. 또 비덱스포츠, 더블루케이 등 국내외에서 최 씨와 연관된 회사들이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의혹이 계속되는 가운데 박 대통령이 이달 20일 국무회의에서 “어느 누구라도 재단과 관련해 자금 유용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중히 처벌받을 것”이라고 발언하자 검찰은 21일 관련자들에 대해 통신 기록을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관계자들을 줄소환하는 것도 대통령의 발언 이후에 진행되고 있다.

 검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최 씨를 둘러싼 비리 의혹은 안 수석 및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뇌물 및 배임혐의→미르·K스포츠재단 자금 유용 수사→최 씨 개인 자금비리→대통령 연설문 유출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검찰은 뒤늦게나마 대형 비리 수사 경험이 있는 검사들을 수사팀에 투입했지만 수사 속도는 의혹이 제기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 청와대-검찰 밀월 끝나나

 검찰의 미르·K스포츠 의혹 특별수사팀(팀장 한웅재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장)은 26일 오전 더블루케이 대표를 지낸 조모 씨, 최모 변호사, 더블루케이 경리 직원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최 씨의 활동이 담긴 77개 녹취록을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성한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은 “녹취록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최 씨의 비선 측근인 고영태 씨는 잠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민단체는 25일 대통령 연설문이 최 씨 컴퓨터에서 대거 발견되는 데 연루된 관련자를 처벌해 달라는 고발장을 대검찰청에 제출했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25일 오전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을 대검찰청으로 불러 미르·K스포츠 등 사건 수사 방향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중요 수사 내용이 청와대로 보고된다는 점에서 ‘셀프 수사’도 논란거리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민을 보고 수사에 임해야 검찰 조직이 산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사건 수사를 기점으로 검찰과 현 정권의 밀월은 사실상 끝날 거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김준일 jikim@donga.com·권오혁·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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