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주승현]대북 확성기 심리전 진실 왜곡은 없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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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승현 전 북측 비무장지대 방송요원 통일학 박사
주승현 전 북측 비무장지대 방송요원 통일학 박사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북측 최전방에서 근무한 탈북자들에 따르면 확성기 방송 내용을 처음에는 믿지 못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믿게 되었다, 결국 목숨을 걸고 휴전선을 넘어오게 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며 대북 확성기는 북한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심리전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순간 나는 두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전날 관계 부서에서 대북방송을 듣고 넘어온 인민군 귀순자에 대해 물어왔을 때 “단 한 번도 그런 사례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던 터였다.

필자가 귀순 전 비무장지대에서 북한군 방송요원으로 근무했던 시기는 남북한 모두 심리전 방송을 진행했던 때였지만 남측의 대북 확성기 때문에 귀순한 북한군은 없었다. 그 이후 11년 동안 심리전 방송이 중단됐으니 이때 휴전선으로 넘어온 귀순자들도 대북 확성기 방송을 듣고 넘어왔을 리는 만무했다. 지난해 8·25 합의 이후 중단했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올해 초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다시 재개해야 했던 입장은 이해되지만 굳이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서 보고해야 했을까 하는 안쓰러움마저 들었다.

북한의 대남 확성기와 남한의 대북 확성기 모두를 경험한 필자는 2002년 월드컵 때 대북 확성기를 통해 경기가 생중계됐고 한국 선수가 골을 넣으면 북측 초소에서 군인들이 ‘와’ 하고 함성을 질렀다는 심리전 방송 담당자의 인터뷰를 보면서 피식 웃었던 적도 있다. 대북방송을 듣고 함성을 지르면 총살감이 아닌가.

그뿐이 아니다. 비무장지대 인근의 개성시에서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낮에는 10km, 밤에는 24km 지역에서까지 청취할 수 있다는 남한 심리전 부서의 호언이 들렸다.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대북 확성기 타격을 운운하며 전쟁 불사까지도 주장하던 북한이 8개월째 잠잠한 것이다.

그 와중에 올 4월 180억 원을 들여 확성기 40대를 추가 구입하기로 했던 대북 확성기 도입사업에 비리가 터졌고 국군심리전단이 압수수색당했다. 대북 확성기의 가청거리가 3km밖에 안 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비무장지대는 남북한이 합쳐 4km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어떤 위협도, 대응의 필요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심리전은 전쟁의 또 다른 이름이자 국가안보의 방화벽이다. 그리고 심리전의 특성상 사실만을 얘기할 수 없다. 하지만 진실을 왜곡한 대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주승현 전 북측 비무장지대 방송요원 통일학 박사
#박근혜#북한 확성기 방송#심리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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