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획정’ 손놓은 정치권]전문가들이 제시한 5가지 해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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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헌법 위에 군림하는 국회, 획정위 전면 재구성해야
②국회의장 직권상정 결단 필요
③획정 실패할땐 위원 전원 사퇴
④의결 정족수 ‘과반수’로 바꾸고
⑤최소의석보장제 등은 20대 국회서

《 헌법재판소의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 시한(지난해 12월 31일)을 넘긴 정치권이 ‘무법(無法)의 직무유기’를 해놓고도 느긋한 모습이다. 전국 246개 선거구의 실종 사태를 맞았지만 현역 의원들의 법적 지위까지 사라진 건 아니어서 급할 게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치 신인들의 발목을 잡는 데 효과적이라며 내심 웃고 있다. ‘헌법 위에 군림하는 국회’, 이대로 둘 것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끓어오르고 있다. 》여야 지도부가 ‘입법부 비상사태’ 해결을 위해 만났지만 11일 협상에서도 선거구 획정 논의는 빈손으로 끝났다. 선거구 획정 자체만으로도 협상 타결이 어려운 상황에서 여당은 청와대 눈치를 살피며 노동개혁 5법 등 쟁점 법안과의 연계를 강력 주장하고 있다.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야당은 선거구가 획정될 경우 탈당 가속화 등을 우려하며 시간을 끄는 눈치다.

한마디로 선거구 획정 지연은 여야의 ‘떠넘기기 공전’으로 요약된다.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과 선거 무효 소송 등 큰 혼돈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4·13총선 연기론’까지 제기될 정도다.

전문가들은 획정위를 명실상부한 독립기구로 만들기 위해 “이제라도 단계별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선 여야 지도부가 획정위에 개입하지 말고 전권을 위임하겠다고 공식 선언하라는 것이다.

○ ‘지역구 253개’ 기준으로 획정안 만들라

선거구 공백 장기화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정의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꼽힌다. 여야가 지역구 253석(비례 47석)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 만큼 입법 수장인 정 의장이 불가피하게 결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여야가 선거구 획정에 합의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의장이 여야가 잠정 합의한 지역구 253석을 획정위에 마련할 것을 요구하면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지역별로 구체적인 의석수도 지정해 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행 지역구 246석 가운데 영호남 의석을 어떻게 배려할지를 놓고 획정위에서 갑론을박을 벌인 만큼 이번에는 구체적인 획정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획정위원은 “지역구 253석으로 기준안을 국회에서 보내오면 논의할 수 있다”면서도 “가장 좋은 방법은 시도별로 의석수를 결정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여야 협상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비례대표 충원 방식 등은 20대 국회에서 별도로 논의하자는 주장도 있다. 야당이 주장하는 소수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보장해 주는 최소의석보장제도 도입과 만 18세로의 투표연령 하향 조정은 일단 획정안만 처리한 뒤 20대 국회에서 별도의 위원회를 만들어 논의하자는 제안이다.

○ 현 획정위 해체의 극약처방도 고려하라

관건은 현 선거구획정위가 과연 253석을 기준으로 획정안을 만들 수 있느냐에 있다. 정치권은 겉으로는 중앙선관위 산하에 독립기구로 선거구획정위를 만들었지만, 뒤로는 ‘배후조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원장을 제외한 획정위원 8명은 사실상 여야 동수(4명씩)로 구성돼 결론이 날 수 없는 정치권의 아바타(분신)로 전락했다. 253석 방안마저 획정위에서 획정안 도출에 실패할 경우 획정위원 전원이 사퇴해야 한다는 극약처방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중앙선관위 사무차장인 김대년 위원장은 획정 무산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자연스레 나머지 획정위원들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실상 여당 측 간사를 맡고 있는 가상준 획정위원(단국대 교수)도 이날 사퇴를 결심했다.

○ 획정위 의결 ‘과반수’ 변경도 방법

획정위 구성 방안을 뜯어고칠 필요성도 제기된다. 현재 여야 성향 4명씩으로 돼 있는 획정위원을 여야 2명씩 총 4명을 추천인사로 받고 나머지는 중앙선관위원장의 추천을 받아 직접 지명하자는 것이다. 의결정족수를 현행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아닌 ‘과반수’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9명 중 4명이 정치권 몫이고 나머지 5명은 중앙선관위원장이 지명하기 때문에 여야가 합의하지 못해도 획정위에서 획정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획정위원들의 사퇴는 시간상 지명 절차가 필요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면 해야 한다”며 “획정위원장 역시 획정위에서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부여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획정위원장을 중량감을 갖춘 중립적 인사로 정해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치권이 획정위에 아무런 물밑 조종을 할 수 없도록 ‘의원 청탁 금지 조항 신설’ 등을 제도화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고성호 sungho@donga.com·강경석 기자
#선거구획정#국회의장#의결정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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