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核 언급 빼고 시장경제적 개혁 시사한 김정은 신년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일 00시 00분


코멘트
북한의 김정은이 어제 신년사에서 “(8·25 합의에) 역행하거나 대화 분위기를 해치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우리 측에 주장하면서도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마주 앉아 민족 문제, 통일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작년 12월 차관급 남북 당국회담이 북측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를 고집해 결렬됐지만 국제적 고립과 재정 부족에 가로막힌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남북 대화의 끈은 놓지 않겠다는 메시지다.

김정은은 이번 신년사에서 북핵 개발을 뜻하는 ‘자위적 핵 억제력’이나 핵과 경제의 ‘병진 노선’을 언급하지 않았다. 2013년 3월 병진 노선을 국가 목표로 공식 채택한 이후 신년사에서 이 노선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오랜 맹방이었던 중국까지 가세한 국제사회의 압박과 북-중 관계 개선을 의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기 전까지는 실질적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김정은에게는 36년 만에 열리는 5월 7차 노동당 대회가 최대 관심사일 것이다. 김정일 시대에 대규모 식량난 때문에 열 수 없었던 행사를 거창하게 열어 본격적으로 자신의 시대를 이끌겠다는 의도다. 김정은은 ‘올해 강성국가 건설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자’라는 구호와 ‘자강력 제일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내세우며 “당 대회에서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놓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북한식의 시장경제 개혁 조치를 공식화할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청년강국’과 사회 통제를 강조하며 ‘경제강국’ 건설을 주문한 것도 청년들의 경제적 불만을 의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 정권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외부의 관측과는 달리 장마당 허용 등 중국의 개혁 개방 초기와 비슷한 조짐을 보이며 표면적으론 어느 정도 안정돼 가는 듯하다. 하지만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내세운 인민생활 문제는 핵 카드를 완전히 버리지 않는 한 해결이 요원하다.

통일부는 김정은의 신년사에 대해 “북한에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북의 진로는 김정은의 말이나 신년사가 아니라 실제 행동을 보고 냉철히 판단해야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김정은의 수사에 현혹돼 방심하거나 서두르다 낭패를 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